판사가 방청객 웃음 지적하자 “웃지도 못합니까”라고 응수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ㆍ김다빈 인턴기자]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앞둔 검사는 재판 전략을 짜며 이렇게 말합니다 “배심원들은 감정에 호소하기 쉬우니까 자극적인 증거들을 골라서 제시해야 해.” 검사는 재판에서 피해자의 잘린 손목 사진을 그대로 노출해 범죄의 잔혹성을 부각시켰습니다.
재판은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하지만 이것이 언제나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재판의 합리성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허상일지도 모릅니다. 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판은 합리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합리성을 지향해야 한다.’ 많은 경우 재판의 결론은 그저 합리성이라는 이상에 다가가는 길목 어드메에서 멈춰버린 미완의 진실일 뿐입니다. 헌법이 3심제를 규정하고 있고, 중요한 사건을 세 명의 판사가 합의해 심리하도록 하는 것은 진실과 합리성이라는 이상에 조금이라도 다가가려는 발버둥일지 모릅니다.
문제는 합리적인 재판을 방해하기 위한 공격이 수시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재판 당사자들은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합니다. 죄 없는 사람을 무고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꽁무니 뒤로 숨기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한 판사는 “진실을 알고 있는 당사자들이 법정에서는 이를 숨기기에 급급하면서, 우리에게 진실을 가려달라고만 한다”고 토로한 바 있습니다.
합리적 재판에 방해가 되는 일은 법정의 방청석에서도 일어납니다. 어떤 소송 당사자들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대거 동원해 법정에 나타납니다. 그것은 일종의 묵언 시위로 재판부에 간접적인 압박이 됩니다. 몇 해 전 모 기업 회장의 재판이 열린 법정 방청석의 맨 앞자리에는 회사 직원들이 빼곡히 들어앉았있기도 했습니다.
현재 법원에서 기업 오너가 재판을 받고 있는 한화ㆍSKㆍLIG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기업은 총수의 공판기일에 재판에 반드시 참관할 필요가 있는 배상명령(범죄 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을 형사재판 과정에서 받아내는 것) 신청자들이 법정에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직원들을 대거 동원해 원성을 산 바 있습니다. 다른 기업 역시 재판에 방청을 온 직원들이 검사가 하는 말끝마다 노골적으로 비웃어 재판 분위기를 흐렸습니다. 대개의 국가보안법 사건의 경우에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피고인을 응원하기 위해 단체를 이뤄 방청을 옵니다. 재판 공개의 원칙에 비춰 재판 방청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지만, 그 목적이 재판부에 모종의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라면 권리의 범위를 뛰어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는 국민참여재판의 경우에 더욱 크게 드러납니다. 법논리로 무장하고 여러 사건을 다뤄본 판사는 합리성을 방해하는 요소들에 흔들릴 가능성이 적지만, 일반 국민들 중에서 선정된 배심원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참여재판이 법논리 대신 감정 호소에 취약하다는 지적은 참여재판이 도입되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한 판사는 법원 내부게시판에 참여재판 후기를 이렇게 썼습니다. “최후진술은 배심원으로 하여금 증거를 기억, 해석하도록 도와야 하지만 변호인단은 감정적이고 주변적인 진술로 배심원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정식으로 다투지 않는 부분들을 최후변론에 끼워넣어 배심원의 평결에 영향을 끼치는 지능적인 전략에 법원의 대처방안이 절실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올해 있었던 한 국가보안법 사건의 재판에서 변호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려고 하자, ‘자칫 법정이 선전ㆍ선동의 장이 되고, 재판이 여론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난 24일 보수논객 지만원(72) 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은 그러한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지 씨는 지난해 대선에 앞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사람이 먼저다’는 슬로건을 비방하는 신문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광고는 “전국의 현수막들에 ‘사람 우선’이라며 사람이라는 단어가 도배됐으며,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을 ‘사람중심철학’이라고 부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 씨 측은 자신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내용을 실었을 뿐, ‘문재인’이나 ‘민주통합당’ 등 특정 후보를 가리키는 문구가 없었기 때문에 무죄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법정에는 20~30여명의 지 씨 지지자들이 방청을 왔고, 그들은 재판 내내 지 씨에 대한 지지를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지 씨를 고발한 선관위 직원이 나가서 증언을 할 때 한 방청객은 “코미디다”라고 깔깔대며 웃다 판사가 지적하자 “웃지도 못합니까”라고 응수하기도 했습니다.
검사가 지 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구형할 때 지 씨 지지자들은 티가 나도록 비웃었습니다. 반면 지 씨 측 최종변론이 끝날 때는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판사가 박수친 이들에게 퇴정할 것을 명하자 구석에서 울고 있던 한 여성은 “죄송하다. 너무 감동받아서 그랬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판사는 소란을 피운 방청객들에게 여러 차례 퇴장 명령을 내렸지만, 실제 퇴장한 사람은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이 선정되는 절차는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법원은 피고인과 관련이 있는 사람을 배심원에서 배제할 뿐만 아니라, 이미 배심원에서 선정된 사람도 신문 기사를 읽거나 피고 측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막습니다. 배심원들이 소위 ‘오염’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죠. 참여재판의 90%이상이 하루만에 끝나는 이유, 참여재판 상당수가 밤샘재판으로 이어지는 이유 역시 ‘오염’을 막기 위해서 입니다. 지 씨 재판이 열린 4시간여 동안 지 씨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재판을 한 7명의 배심원들은 과연 ‘오염’으로부터 얼마만큼 지켜졌을까요?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 김환수)는 24일 지 씨에 대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배심원 7명 가운데 3명은 지 씨가 무죄라고 평결했습니다. 지 씨는 다음날인 25일 대법원에서 지난해 총선 때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인정돼 벌금 100만원을 확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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