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산수국 무리가 참 아름답다. 남빛 혹은 보랏빛 꽃빛이 좋고, 하늘을 반쯤 가린 숲에서, 특히 이즈음처럼 숲에 안개가 스며들어 더욱 신비스런 숲 사이로 언뜻언뜻 들어나는 산수국이 있는 풍광은 내 가슴 속에 담긴, 여전히 마음을 흔드는 가장 멋진 자연의 한 모습이다. 그래서 이맘때 SNS 내표시 사진도 산수국이다.

그렇게 산수국에 빠져 있노라니 아주 아주 오래 전, 내가 스무 살을 갓 넘겨선 시절 추억이 떠올랐다. 동아리에서 선배들과 꽃과 사람을 비유하며 이야기하던 중, 내게 이러저런 관심과 호의를 베풀던 한 사람이 나를 ‘수국’ 에 비유해 주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지난일이어도 낯간지럽지만 하여튼 “노랗고 빨간 꽃들의 현란하고 화려함에 비해 수국은 절제되고 알수록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가진 꽃이라고”. 어린 마음에 크게 감동하여 마음을 움직였던 기억이 있다. 십대부터 지금까지 좋아하는 색이 바로 남보라색이 아니던가.

하지만 젊은 날의 추억은 꿈결처럼 흘러가고, 식물 공부도 한참 동안 해 온 지금으로선 산수국이 아닌 수국에 비유를 당한 일엔 찜찜한 부분이 있다.

우리 산에서 자라는 산수국은 두 종류의 꽃들이 접시처럼 모여 피는데 서로 지혜롭게 분업과 협업을 한다,

먼저 가장자리에는 달리는 꽃(無性花)은 꽃잎만 남아 곤충들을 유혹하는 일을 담당하고, 이 꽃들을 보고 곤충이 날아오면 가운데에 꽃잎은 퇴화된 채 수술, 암술, 씨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작은 꽃(有性花)들에게서 실제 꽃가루받이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잘알고 있는 수국은? 사람들이 보기 좋게 하기 위해 야생의 산수국에서, 유성화는 없애고 화려한 무성화만을 가득 만들어 공처럼 크고 둥글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수국은 겉 모습만 화려하지 실제로 꽃가루받이를 하지 못해 씨앗을 맺지 못한다.

게다가 수국은 꽃색의 변화가 많다. 꽃이 흰색으로 피기 시작했던 꽃들은 점차 시원한 청색이 되고 다시 붉은 기운을 담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자색으로 변화하는 경향도 있고, 토양의 조건에 따라 알카리 성분이 강하면 분홍빛이 진해지고 산성이 강해지면 남색이 더욱 더 강해진다 한다.

그래서인지 이 꽃의 꽃말도 변하기 쉬운 마음이다. 그러니 여자에게 이러한 비유는 아주 그릇된 것이다. 설마 오래 전 수국같다는 말은 전했던 선배는 공대생이었으니 이러한 이치를 알고 말했을 리 없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곤 한다.

어디 수국만 그러하랴. 세상도 갈수록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고 있지 않나 싶다. 수국의 아름다움은 한 대를 이어가지 못하 듯 사람도, 물건도, 생각도, 세상의 관계도, 나라의 정책도, 우리 눈앞을 가로막는 현란함에 미혹되지 않고, 건강한 아름다움, 진실된 아름다움, 소박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만들어가야 오래도록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 비로 가득찬 이 여름의 숲에서 산수국들이 도란도란 그윽하게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