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주연 김수현은 인터뷰에서 “작품을 선택할 무렵인 지난해 많은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그 중에서 4편 정도가 간첩을 주인공으로 한 서로 다른 영화였다”고 밝혔다.
그가 주연을 맡아 5일 개봉하는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그를 포함한 3명의 꽃미남배우가 간첩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올 하반기에는 아이돌 스타 빅뱅의 멤버 탑(본명 최승현)이 주연을 맡은 ‘동창생’이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여기서 최승현의 역할 역시 간첩이다. 갑자기 웬 간첩이고, 하필이면 왜 젊고 잘 생긴 20대 스타들일까?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과거와는 다른, 모종의 변화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
젊은 세대들에게 간첩이란 1970년대 불리웠다는 이른바 ‘간첩송’ 속의 ‘이른 아침 산속에서 양복입고 내려오는 자, 광화문 앞에서 중앙청을 찾는 자, 술집에서 취한 김에 ‘동무’ ‘동무’ 하는 자, 한밤 중에 이불 쓰고 북한 방송 듣는 자’가 아님은 분명하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남파를 위해 죽음보다 혹독한 특수 훈련을 받은 북한의 정예요원이 남한의 어느 가난한 달동네의 ‘바보청년’으로 위장 잠입했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에서 시작한다.
허름한 슈퍼마켓에서는 ‘동구’(김수현 분)가 주인공이다. 뭐가 좋은지 늘 해벌레 웃고 다니고, 항상 어린애처럼 코를 훌쩍이고, 골목 어귀에 다닐 때마다 늘 엎어지고 자빠지니, 동네 아이들에게조차도 놀림을 받는 ‘바보 청년’이다.
같은 동네에는 또 다른 남파간첩 청년이 있는데 오디션을 보겠다며 기타를 튕기는 노란 머리의 청년 ‘해랑’(박기웅 분)이다. 나중에 합류한 더 어린 청년은 교복을 말쑥히 차려입고 친구와 어울려 다니는 고교생(이해진 분)으로 신분을 감췄다.
남으로 내려보냈지만 지령은 감감무소식이었던 ‘당’에서 어느날 이들에게 청천벽력같은 임무를 내려보낸다. ‘전원 자결’이다. 달동네의 간첩 청년 셋은 당의 명령에 불복하고 북에서 내려보낸 암살조와 대결에 나선다는 내용.
웹툰을 보지 않은 관객에겐 인물 설정과 이야기의 전개가 새롭다. ‘들개처럼 태어나 괴물로 길러졌다’는 첫 대사처럼 오로지 살인 기계로 훈련받은 청년들이 남파 후 바보청년과 록커지망생, 평범한 고교생으로 위장해 살아간다는 발상 자체가 주는 재미와 웃음이 만만치 않다.
이들이 가난하지만 따뜻한 심성의 달동네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평범한 삶이 주는 행복을 점차 깨달아간다는 내용은 제법 짠한 울림을 준다. 후반부에는 간첩 청년들과 북한의 암살단, 국정원 직원들이 물고 물리는 액션 스릴러로서 박력있는 면모를 보여준다.
만듦새는 고개를 끄덕일만하지만, 웹툰을 읽은 관객에겐 다소 아쉽다. 인물 및 공간, 장면, 이야기, 화면구도까지 원작을 따라가는 데 급급했다. ‘스크롤 다운’으로 보는 웹툰에선 미덕이었던 ‘여백’이 스크린에선 이야기의 빈틈, 설정의 작위성, 인물 성격의 통일성 결여로 드러난다.
다소 아쉬운 원작의 영화화지만, 분단을 다루는 한국영화의 변화된 경향을 엿보기엔 충분하다. 분단이나 간첩은 이제 영화 속에선 ‘역사적 실존’이나 ‘이념 및 체제 대결의 산물’로 다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락 판타지 장르’의 소재로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직으로부터 버려진 스파이’라는 할리우드 첩보물의 유행과 한국 대중문화 특유의 ‘꽃미남’이라는 로망이 결합한 결과가 바로 ‘꽃미남 간첩’이라는 판타지가 아닐까?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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