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대문 합동 노숙인 급식소
빚지고 사업 접은 50대 배씨도 고아로 요리사였던 60대 장씨도 자립프로 나가려 새벽부터 줄서
오전 내내 일하면 한달 45만원 적은 돈이지만 희망의 싹 키워
서울 서대문구 합동에 위치한 ‘구세군 브릿지센터’. 이곳에는 채 어스름이 걷히기 전인 오전 4시부터 주린 배를 채우려는 노숙인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하루 평균 이곳을 찾는 노숙인들은 500여명.
“여기서 아침 밥 주는 거 맞나요?” 쭈뼛쭈뼛하는 기자의 질문에 배형남(가명ㆍ59) 씨는 “그냥 들어가서 이름 대고 번호표 받으면 돼”라고 답했다. “창피하면 아무 이름이나 대충 지어 말하면 되고…”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배 씨는 2년반 전부터 노숙생활을 했다. 지금은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방을 얻어 지낸다. 월세는 25만원이다. 돈은 어떻게 마련하냐는 질문에 배 씨는 “자활한다”고 대답했다. ‘자활’은 노숙자 자립 후원 프로그램이다. 하루 네 시간 격일로 일하면 한 달에 45만원을 거머쥘 수 있다. 이날 오전 청소현장으로 나갈 예정인 배 씨는 오전에 일하려면 든든히 먹어둬야 한다며 배식판을 세게 움켜쥐었다.
“담배나 한 개비 줘봐.” 배 씨는 담배를 물고선 다짜고짜 “너는 자활하지 마라, 자활 오래하면 이 생활 정리 못한다”고 충고했다. 어리둥절한 기자가 “왜냐”고 묻자 돌아오는 배 씨의 답변은 짧았다. “편하거든….”
배 씨도 한때 일을 했다. 남대문 꽃시장에서 상가 분양을 했고 돈도 꽤 만졌다. 그러다 빚을 졌다. 빚이 빚을 낳았다. 월급도 재산도 집도 모두 압류당했다. 가족도 잃었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장가 간 아들과는 연락이 끊겼다. 하나 있는 여동생은 배 씨의 빚 청산을 돕다 남편과 헤어져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듬성듬성 빠진 머리숱을 짧게 친 그의 이마는 검었고, 깊은 주름골은 새벽 가로등 빛에 생긴 그림자보다 어두웠다.
장진수(가명ㆍ63) 씨는 가족이 없다고 했다. “헤어졌냐”는 물음에 손에 쥔 건빵만 씹었다. 장 씨의 메마른 시선은 허공에 꽂혀 있었다. 그러다 불쑥 배 씨가 “아저씨는 고아야”라고 말했다. 그리곤 남 이야기하듯 말을 이어갔다. “선남선녀가 만났어. 아이를 낳았겠지. 낳고선 버렸어. 왜 버렸는지는 몰라.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가족을 갖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런 거 있으면 이 생활 못해. 이게 편해”라고 답했다. 배 씨는 9년째 노숙인으로 지냈다.
“이 생활에 발을 들여놓지 마. 젊은 놈이 꿈이 있어야지.” 젊은 시절 장 씨에겐 어떤 꿈이 있었을까? 그의 대답은 “밥”이었다.
“요리를 했어, 중국집에서, 주방에서만 삼십년. 한때는 내 가게도 있었고 밥을 만들어 주는 게 좋았지.” 그 꿈을 왜 버렸냐고 묻자 장 씨는 “이젠 힘들어서 못해. 하루하루 내 한 입 먹기 위해 모든 시간을 쓰는데, 이젠 가능이나 하겠어?”라고 대답했다.
노숙인들을 위해 새벽밥을 짓는 사람들은 늦은 아침을 먹는다. 배식이 끝나고 다음날 식재료 정리를 마친 시간은 오전 9시30분. 이들의 아침 식사 준비시간은 대개 새벽 1시부터다. 이들은 한 달에 42만원을 받고, 하루 9~10시간을 일한다. 이들 중에는 노숙자 출신도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진선호(가명ㆍ48) 씨는 과거 홍제동의 중국집에서 주방장으로 일했다. 월급도 꽤 많이 받았다. 그는 왜 이곳에서 일하는 것일까. “힘들다 생각하면 이 일 못해요. 그냥 노숙인들 먹여주는 게 좋으니까”라고 대답했다. 진 씨에게도 밥은 꿈이고 기쁨이다. 곁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또 다른 조리사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저 열심히 사는 사람들로 불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송골송골 땀이 맺힌 코잔등에 밀려 그의 안경이 올라갔다. 그의 안경 너머로 서대문 노숙인 급식소에 아침이 밝아왔다.
김기훈 기자/
김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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