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는 연극과 실재, 배우와 극중인물이 이루는 경계에 관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실제 범죄자들이 영화 속 연극을 하는 죄수로 출연한다.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 실제 재소자들 배우 섭외 감옥서 ‘줄리어스 시저’ 연극 배신·살인 등 익숙한 과거 연기 참여재소자 변화과정 그려
연극-인생 ‘경계의 벽’ 허물어
김기덕 감독은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 ‘아리랑’에서 어떤 배우가 악역을 잘한다는 것은 실제 그 사람의 내면이 그만큼 악하다는 증거라는 것이 ‘아리랑’ 속 김기덕의 말이었다. 과연 그럴까? 연기를 잘한다는 배우들 몇 명에게 물었다. 영화 속에서 영웅도 되고 성자도 되지만, 때로 살인자로 변모하기도 하고, 극악한 강간범도 연기했던 배우들. 그들에게 연기란 배우 자신이 가진 자아의 반영 혹은 욕망의 상상적 표현이나 인간 본성의 드러냄이기도 했지만, 자기 마음 속에 숨겨졌던 내밀한 상처의 치유과정이기도 했다. 수많은 배우들의 연기 지도를 맡았던 한 교수는 배우 지망생들의 실기수업 때 자주 공격적인 질문을 던져, 학생들을 울리곤 한다고 했다.
무대 위에서도 여전히 배우 자신을 가둔 완고한 자의식의 껍질을 깨는 작업이리라. 이때 연기는 작품을 해석하고, 관객에게 그것을 내보임으로써 감동을 주는 행위이기 이전에, 배우 스스로가 가진 마음 속의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하는 사이코 드라마이자 정신분석 상담치료다.
이러한 연극과 연기의 기능에 주목한 것이 역할극을 통한 치유요법이다. 최근 가족이나 부부간의 갈등을 다룬 TV 교양프로그램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역할극의 참가자들은 극한의 상황을 통해 자신이 회피하고 숨겨 왔던 욕망과 상처를 마주하고, 대개는 눈물을 쏟는다.
연극이나 연기는 ‘아리랑’ 속 김기덕 감독의 가시돋힌 말처럼 폭력적인 본성의 반영일까, 내면의 병적 징후를 드러내고 보듬는 힐링의 행위일까. 문제는 연극과 인생, 배우와 극중인물 간에 이루는 경계다. 그것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아서 어느 순간이 되면 안팎이 뒤바뀌고, 경계가 해체되며, 결국은 수학자 로저 펜로즈가 창안한 계단이나 삼각형, 악마의 포크 혹은 에셔의 그림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불가능한 도형’이 되고 만다.
관객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연극일까 실제일까. 무대 위 혹은 스크린 속의 존재는 배우 그 자신일까, 다만 극중인물일 뿐일까. 실재와 상상 사이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이 착시와 혼돈이야말로 모든 연극과 연기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햄릿’이 삼촌이 부친살해범이라는 확신을 얻은 것은 연극을 통해서였으며, ‘왕의 남자’에서 공길과 장생, 연산의 질투와 애욕을 불러일으키고 조정의 피바람을 가져온 것은 ‘장님놀이’와 ‘손가락인형놀음’, 다양한 굿과 연희였다. ‘블랙스완’에서 발레리나 니나는 자신이 역을 맡은 ‘흑조’라는 망상으로 점차 빠져들어가 파국을 맞는다.
이탈리아의 거장 파올로-비토리오 타비아니 형제 감독의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는 연극과 실재, 배우와 극중인물이 이루는 경계에 관한 작품이다. 로마 레비비아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의 교화 프로그램으로 셰익스피어 연극 ‘줄리어스 시저’를 무대에 올리기로 한다. 로마인들의 영웅인 줄리어스 시저가 절대권력자인 황제가 되자 그의 친구이자 시민들로부터 고결한 정치인으로 추앙받았던 브루투스가 암살을 모의해 실행한 후, 정적이었던 안토니에 의해 파국을 맞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연극이다.
영화는 수감자들이 오디션에 응해 배우로 뽑히고, 연극을 연습해 가며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탈리아 마피아 관련 사건으로 6년간 복역했던 살바토레 스트리아노(브루투스 역)와 마약 밀매범으로 17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지오반니 아르쿠리(시저 역), 살인범으로 종신형에 처해진 코시모 레가(카시우스 역) 등 실제 범죄자들이 영화 속 연극을 하는 죄수로 출연했다. 극중 어떤 죄수는 공화정이라는 정치적 이상을 위해 친구의 살해를 결단한 브루투스를 연기하면서 살인을 저지른 동료를 떠올려 깊은 고뇌에 빠지기도 한다. ‘시저’ 역을 맡은 죄수는 간사한 ‘데시우스’ 역의 또 다른 재소자에게 “실제로도 아첨꾼”이라며 비난하며 다툼을 벌인다.
음모와 배신, 살인 등 범죄자들에게 훨씬 더 익숙한 상황들은 연극을 또 하나의 현실이자 실재로 마주하도록 한다. 타비아니 형제 감독은 “우정과 배신, 살인과 선택의 고통, 힘과 진실의 가치 등 셰익스피어가 일으키는 감정의 시적 압박과 재소자들의 삶의 어두움을 대조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방법으로 작품에 깊이 빠져들 때 우리 또한 스스로를 마주하게 된다고 생각한다”고 연출의 변을 남겼다.
레오 카락스 감독의 ‘홀리 모터스’에서 드니 라방은 하루 동안 무려 9개의 서로 다른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를 ‘연기’한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하나의 연극을 상연하며, 시시각각 가면을 바꿔쓰고 무대에 나서는 ‘배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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