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정진영 기자〕그들이 넘어온 한국 열 아홉 구비엔 ‘한국사람’이 있었다.
지난 1980년, 이미 수년간 가요계에서 실력있는 뮤지션으로 꼽히고 있었고, ‘돌아와요 부산항에 ’같은 히트곡을 가지고 있었던 30세의 청년가수 조용필은 대마초사건으로 4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후, 자신으로 이름으로 된 첫 정규 앨범 ‘창밖의 여자’를 발표한다. 그의 밴드 이름대로 가왕, 국민가수의 ‘위대한 탄생’을 알린 서곡이었다. 그리고 약 10년 후인 1989년 한국 영화계에는 29세의 청년 영화감독 강우석이 당대의 청춘 스타 최재성과 최수지를 기용한 장편 데뷔작 ‘달콤한 신부들’을 개봉한다. 전무후무한 ‘충무로 흥행제왕’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었다. 그리고 1994년 조용필은 한국 대중문화사 최초로 누적 음반 판매 1000만장을 돌파했다. 다시 꼭 10년 후인 2004년 강우석 감독은 영화 ‘실미도’로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영화’ 기록을 세웠다.
2013년 4월, 63세의 조용필은 19집 앨범 ‘헬로’를 발표하고, 53세의 강우석은 19번째 영화 ‘전설의 주먹’을 내놓는다. 그렇게 ‘가왕’과 ‘한국 영화의 거장’은 대중예술가로서 열 아홉 구비를 한국 사람과 함께 넘어왔다. 같은 시기 공교롭게 한국 가요사와 한국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두 ‘거장’이 나란히 이른 ‘19’라는 숫자는 그냥 우연한 겹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징성과 무게감이 느껴진다.
조용필에게 국민가수라는 타이틀을 선사해준 80년대를 지나 가요계는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을, 21세기엔 ‘강남스타일’의 싸이를 배출했고, 강우석에게 ‘한국영화 파워 1위’라는 왕좌를 마련해줬던 90년대를 지나 한국영화는 박찬욱과 봉준호, 김지운, 최동훈 등 걸출한 스타들을 맞았다. 하지만 조용필과 강우석, 수십년간 한국인들의 애환과 함께 해온 그들의 19번째 승부는 그들이 여전히 당대의 한국 사회와, 당대 한국인의 정서와 뜨거운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가장 젊은 청년’임을 입증한다. 포크와 하드록, 발라드, 일렉트로니카를 횡단하는 ‘헬로’로 조용필은 그의 음악의 피에 들끓는 청년의 세찬 박동을 육화했고, 21세기의 가장 핫한 미디어 웹툰과 조우한 ‘전설의 주먹’에서 강우석은 주연배우 황정민의 복근 이상으로 팽팽하고 선명한 ‘영화의 근육’을 과시한다. 어제 반짝 빛나던 별을 오늘은 기억할 수 없고, 가요차트엔 늘 이름을 알 수 없는 십대의 ‘아이돌’로 꽉 차버리는 시대, 한 두 편을 만들고는 자취를 감춰버리는 신인 감독들이 비일비재한 영화계. ‘원 나잇 스탠드’같은 조로(早老)의 엔터테인먼트산업계에서 그들이 고투처럼 치러낸 18번의 라운드와 새로운 19번째 승부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80년대 이후 한국 대중문화사의 ‘축사’인 조용필의 디스코그래피와 강우석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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