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코끼리로 유명한 글로벌 스타 ‘코식이’ 뒤엔 ‘아빠’ 김종갑 사육사가…20년간 자식처럼 돌본 코식이와 김 사육사의 감동 스토리

어린시절 하굣길 방해하던 무서운 수탉 물리치려다 동물에 관심…농고 진학한 후엔 소·돼지 동물들과 3년 내내 어울려

입사직후 만난 세 살배기 ‘코식이’와 먹고 자며 2년간 함께 뒹굴었더니…어느날 갑자기 “좋아 좋아”하며 사람처럼 말해 깜짝 놀라

발성기관 없는 코끼리, 코를 입으로 넣어 혀놀림으로 바람 파이프 통과시키듯 소리내

인사할 때도 먹이줄 때도 서로 ‘침’ 묻혀가며 교감…23세 혈기왕성한 코식이 장가가서 ‘손주’ 내손으로 받는게 꿈

최근 본 것 중 가장 감명 깊은 영화가 있다. 영화 명장 이안 감독이 연출한 ‘라이프 오브 파이’. ‘ 파이 이야기(LIFE PI)’를 원작으로, 바다 한가운데 좁은 구명보트에서 그 무섭다는 벵골 호랑이와 함께 남게 된 한 소년. 그들에게 펼쳐지는 놀랄 만한 교감을 그린 영화. 재미있었고, 뭔가 교훈도 느껴졌다. 다만 3D의 몽환적인 화면을 끝까지 놓지 않으면서도 ‘사람과 호랑이’가 극한 상황이 되면 저렇게 교감할 수 있게 될 것인가 하는 물음은 의문점으로 남았다. 그래도 호랑이와 저렇게 친해질 수는 없겠지 라는 생각.

하지만 이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김종갑(46) 삼성에버랜드 프로사육사를 만나고 난 후다. ‘파이 이야기’가 절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김 사육사. 그는 에버랜드의 명물, 세계적인 동물 스타인 ‘말하는 코끼리’ 코식이의 아빠다. 사람처럼 호적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김 사육사는 코식이를 아들로 여기고 코식이는 그를 아빠로 여긴다.

코식이는 전 세계에서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유일한 코끼리다. 코끼리는 상식적으로 말을 할 수 없다. 발성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끼리가 말을 한다고 하면 믿을 수 없겠지만, 직접 이를 목격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코식이는 ‘좋아, 안 돼, 누워, 아직, 발, 앉아, 예’ 등 한국어 단어 7개 정도를 한다. 특히 ‘좋아’라는 단어는 마치 사람이 하는 것 같이 정확하다.

코식이는 글로벌 스타다. 최근 세계 저명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 온라인 판에 코식이에 대한 연구논문이 게재되면서 국내외 선풍적인 관심을 끌었다.

코식이는 어떻게 말을 하게 됐을까. 김 사육사의 헌신적 사랑이 낳은 불가사의한 결과다. 그렇다면 김 사육사는 ‘동물의 말 틔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그건 아니다.

김 사육사는 “동물은 애정을 갖고 돌보는 게 중요하다. 교감에 필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이라고 했다. “헌신적으로 사랑을 주면 동물은 절대 배신하는 법이 없다”고도 했다. 배반과 갈등, 견제와 시기로 점철된, 지금도 난무하는 인간사를 염두에 둔다면 매우 뼈 있는 멘트다.

지난 14일 용인 삼성에버랜드의 한 코끼리 사육장. 기다리고 있던 김 사육사와 코끼리 방으로 들어섰다. 거대한 방. 키 3.5m, 무게 5t 이상의 육중한 코식이가 반가움을 표한다. 김 사육사를 보고 반색을 하는 것이었다.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김 사육사가 움직이는 대로 코식이가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건초를 코에 둘둘 말아 먹는 순간을 제외하고는(코식이는 엄청난 식욕을 자랑한다. 건초와 바나나 등 과일을 하루 100㎏ 가량 먹고, 150㎏ 가량 배설한다. 수분이 섞이다 보니 배설물 무게는 더 나간단다).

“전 아빠고, 코식이는 아들이죠. 20년 동안 동고동락을 해 왔으니 나를 아버지로 여기는 것 같아요.”

실제 ‘좋아’를 코식이 입으로 듣고 싶었다. 김 사육사가 자신있게 ‘좋아’라고 물었더니, 과연 코식이가 코를 입으로 가져가더니 저음톤의 ‘좋~아’라고 내놓는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 코식이를 ‘아들’로 만들었을까.

▶수탉 연구하다 보니 동물박사가 됐다=김 사육사는 처음부터 동물과 교감하는 초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다. 아버지가 마을 이장을 했지만, 그땐 다 그랬듯이 넉넉한 살림살이는 아니었다.

그와 동물의 인연은 ‘수탉’으로부터 시작된다.

“초등학생 때였어요. 집에 정말 무서운 수탉이 있었어요.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싸리문 앞에 절 노려보는 수탉을 보면 방에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았어요. 사람 팍팍 쪼고, 날뛰고, 성질 참 대단한 수탉이었지요.”

매일 수탉 눈치만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날부터 수탉에 대해 연구(?)했다. 언제쯤 성질이 가장 괴팍한지, 모이는 뭘 주면 좋은지, 시선을 어떻게 하면 돌릴 수 있는지….

매일 수탉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니 방법이 생겼다. 좋아하는 먹이를 던져주고 잽싸게 집안으로 들어가거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탉을 멀리 유인하는 것을 터득했다.

“제가 동물에 관심을 갖게 된 첫 번째 계기였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오히려 사람보다 동물에 시선이 갔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동물에게도 사람 같은 대접을 해 줘야 한다는 ‘평등의식’도 이때 생겼다. 당시 어려운 살림들 대부분 그랬듯이 소는 귀중한 재산이었다. 그래서 보물 다루듯이 한 것도 사실이다.

소가 새끼를 낳을 때는 인상적이었다. 새끼를 낳은 모습이 아니라 아버지의 부산한 움직임 때문이었다.

“소가 새끼를 낳을 때 아버지는 가마솥에 호박이며, 콩깍지며 한아름 넣어 끓였어요. 소한테 줘야 한다고. 구할 수 있는 것을 다 구해 소에게 지극 정성으로 먹이는 아버지를 보고 ‘아, 동물한테도 정성을 쏟아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가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김천농공고에 입학한 것은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김천농공고는 축산물로 특화된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소, 돼지 돌보는 일을 담당했다. 특히 젖소를 키우는 일은 그의 몫이었다.

새벽 4시 반께 일어나면 젖소에게 달려갔다. 몸 손질을 해 주고 착유(우유를 짜는 일)하고, 맡은 일을 끝낸 뒤에야 학교에 등교했다. 수업이 끝나면 소를 데리고 산에 가서 풀을 먹이고 옥수수나 호밀을 걷어다 김치 절이듯 발효시켜 먹이를 준비하는 일을 하곤 했다.

“고등학교 때의 삶은 한 마디로 동물과 친구로 살았던 기억이 전부입니다. 하루 종일 소나 돼지와 어울려 다녔어요.”

그런 그가 ‘동물의 천국’인 에버랜드에 입사한 것은 정해진 코스였을 것이다. 학교 추천을 받아 에버랜드에서 일하게 됐다. 스스로 행운아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직장을 큰 고민 없이 다니게 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는 고졸이라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이 분야에서 최고의 길을 묵묵히 가는 게 좋을 뿐인데 학력이 무슨 상관 있느냐는 것이다.

“목표가 중요합니다. 뭘 하겠느냐고 목표를 정한 뒤 열심히 하면 되죠.”

사육사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도 한 마디 한다. “단순히 동물이 좋으니까 동물원에 근무하겠다는 생각은 안 됩니다. 단순히 좋아하기만 하면 안 된다는 말이죠. 동물에게 뭘 해 주고 동물에게 뭘 배울지 결정하는 ‘철학’도 필요합니다.”

▶말 못하는 동물, 헌신적 사랑이 필요=코식이와의 인연은 운명적이었다. 1990년생의 아시아코끼리인 코식이는 어린이대공원에서 3살 때 에버랜드에 왔다. 입사 직후 코끼리와 기린을 맡았던 그에게 코식이가 찾아온 것이다. 낯설어 그런지 무리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다. 뭔가를 해 줘야겠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야 지금보다 덩치가 훨씬 작았지만 그래도 무서웠다.

“야생동물 아닙니까. 그땐 지식도 없었고요. 코식이를 돌볼 땐 왠지 겁이 났어요.”

야간 당직을 설 때 사육장을 돌며 온도를 체크하고, 아픈 곳이 없는지 일일이 살피는 일을 했다.

어느 날, 코식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여기서 함께 자고 아빠 같이 돌봐 주면 좋을 것 같겠다’고.

아예 사육장에 둥지를 틀었다. 코식이보다 늦게 자고 먼저 일어났다. 일어나면 맨 먼저 하는 게 코식이를 쓰다듬어 주는 일이었다.

‘침’으로 교감했다. “코끼리는 침으로 애정을 확인합니다. 서로 침을 묻혀주는 것은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표시예요. 인사할 때 침을 발라 코에 묻혀 주고, 먹을 것도 한 입 베어물어 침을 묻힌 후 줬어요. 처음엔 거부하더니 아예 코식이도 침 범벅인 채 제 온몸에 묻히는 거예요.”

2년간 같이 뒹굴며 살았다. 코식이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마치 사람처럼 김 사육사의 모든 것을 따라하면서. 그렇게 둘은 친구, 아니 부자(父子)가 됐다.

2004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육장 안에 있는데 사람 소리가 들렸다. 김 사육사를 빼고는 아무도 없을 시간이었다. “어, 이상하네. 아무도 없는 곳인데…”

범인(?)은 코식이었다. 마치 아이가 옹알이를 하는 것처럼 사람소리를 냈다. 그 순간의 신선한 충격을 그는 잊지 못한다.

“코끼리는 말을 못하거든요. 발성기관이 없어요. 그런데 코를 입으로 넣어 혀놀림으로 바람을 파이프 통과시키듯이 내면서 소리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수년간 동고동락을 하다 보니 코식이는 김 사육사의 모든 것을 따라했고, 소리조차 닮고 싶어 그렇게 한 것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어요. 사람소리 내고 싶어 얼마나 연습을 했을까 싶기도 했고요.”

코식이가 가장 잘하는 말은 ‘좋아’다. 제일 먼저 배운 말이기도 하다. 코식이를 칭찬해 주고 쓰다듬어 주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좋아’라는 단어인데, 그걸 가장 먼저 배운 것 같다는 게 김 사육사의 말이다.

코식이는 말을 함으로써 스타가 됐다. 말하는 사실이 알려진 순간, 국내외 전문가는 물론 지구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았다. 코식이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말을 하는 코끼리가 됐고, 김 사육사는 그런 코끼리를 만들어낸 유일한 사람이 됐다.

코끼리가 말문을 틈으로써 김 사육사도 큰 교훈을 얻었다. 애정을 기울이고, 사람 같이 정을 주면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코식이가 정말 아들 같이 생각되지 않겠습니까?”

코식이에게 배운 것도 많다. 사람들과 달리 정을 주면 정을 되갚는다는 것. “동물은 배신이 절대 없어요. 부성애를 주면 주는대로 받아들이고, 거꾸로 정과 헌신을 선물해줍니다.”

▶코식이가 장가들어 아들딸 낳는 것 보고 싶다=김 사육사의 꿈은 단 하나다. 특별히 아끼는 코식이, 장순이(김 사육사가 집중적으로 돌보는 동물은 코식이 말고 장순이도 있다. 기린인 장순이는 현재 새끼를 17마리 낳아 세계 타이 기록을 갖고 있다. 18번째 새끼를 낳으면 세계 최고 기린 다산 기록이다. 건강하게 18마리째도 직접 손으로 받고 싶다고 했다)가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고, 옆에서 그런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싶은 것이다.

코식이는 사람으로 치면 20대의 혈기왕성한 청년이다. 2년 뒤쯤 장가를 갈 수 있을 것이란다. 코식이 색시로 점지된 암컷 코끼리가 있는데, 아직 14살밖에 안 돼 2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코끼리는 보통 임신기간이 2년. 따라서 코식이가 아빠가 되려면 현재로선 최소 4년은 기다려야 한다.

“코식이가 새끼를 낳는 것을 꼭 보고 싶습니다. 코식이가 제 아들이니까, 제 손주가 되나요? 하하하.”

김 사육사는 코식이의 새로운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요즘 분주하다.에버랜드는 제2사파리인 로스트밸리(Lost Valley)를 개관 준비 중이다. 4월에 오픈하는 이곳은 기존 사파리와 다른 진정한 야생의 사파리다. 동물들이 좋아하게끔 계곡은 물론 진흙, 풀장 등을 만들어 동물들이 야생 그대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만든 곳이다. 이 곳에서 코식이가 흙탕물에 뒹굴며 색시와 함께 자유롭게 노는 모습도 보고 싶단다.

거짓 없는, 순박한 동물들과 살다보니 김 사육사의 가훈은 ‘거짓말 안하기’다.

“예전에 동물(얼룩말)이 잘못된 적이 있는데, 느낀 게 많아요. 어떤 친구(사육사)가 책임이 두려워 진실되게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아픈 원인을 아마 사실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뜻), 그 병의 원인에 대해 솔직히 말했다면 치료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것을 저도 교훈으로 삼고 있는거죠.”

집 얘기가 나오니 문득 궁금해졌다. 김 사육사는 아내와 딸이 있다. 동물에 푹 빠져 사니 아내와 딸의 입은 뾰로통해지지 않았을까.

그런 측면도 있다고 했다.

“딸에겐 동물 이상의 사랑을 줬어요. 그리곤 항상 딸에게 말합니다. ‘동물은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요. 딸은 이해를 해 줘요. 딸도 동물사랑이 그래서 끔찍하죠.”

그렇지만 부인은 좀 다르다고 했다. 밥 먹을 때도 동물 얘기로 시작해 동물 얘기로 끝내다 보니, 결혼 초기 아내는 ‘나보다도 동물들에게 더 잘한다’는 생각으로 몹시 질투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안 그래요. 다 이해를 해 줘요. 배신하지 않는 동물과 지내다 보니 우리 집도 거짓이 없고, 서로에 충실하게 지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코끼리 말문을 틔여준 그 사랑을 김 사육사는 집에서나 동물원에서나 일관되게 실천하고 있다.

김영상 기자/ysk@heraldcorp.com

김종갑 사육사는

▶1968년 경북 상주 생. 김천농공고

▶직급:삼성에버랜드 프로사육사

▶1986년 에버랜드 입사

▶2001년 지식 스타(Knowledge Star)상

▶2001년 에버랜드를 빛낸 25인 선정

▶2006년 창립 43주년 기념 표창(근속상)

▶2010년 서비스 CS 부문 사업부 표창

▶2011년 창립 48주년 기념 표창

▶주요 성과:에버랜드 동물원에서 근무하면서 말하는 코끼리 ‘코식이’, 다산왕 기린 ‘장순이’ 등 다양한 스타 동물을 길러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