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고시원서 만난 공시생…그들의 24시
오전 6시30분부터 학원 입구는 북새통 조금만 늦어도 자리 못잡아 ‘줄서기 전쟁’
체력은 필수, 먹거리 해결이 가장 중요 가격 싸고 양 푸짐한 컵밥 인기만점 점심후 마시는 커피한잔이 유일한 낙
주변 카페·패스트푸드점은 스터디로 북적 스트레스? 가끔 술한잔에 당구 한게임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는 1인 프로젝트 그룹 ‘달빛요정만루홈런’의 ‘스끼다시 내인생’이라는 노래는 지금은 비록 볼품없고 가진 것 없지만 언젠가 역전홈런을 치고 말겠다는 희망을 말한다.
“언제쯤 사시미가 될 수 있을까/스끼다시 내인생”이라는 가사처럼 메인요리로 취급받지 못하는 ‘스끼다시(つき-だし)’ 인생이 번드르르한 사시미회처럼 빛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도 ‘공무원 합격’이라는 꿈을 꾸며 하루를 살아가는 스끼다시 인생들이 존재한다. 비록 현재 빛은 조금 덜하지만 보석 같은 꿈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공시생)들의 이야기를 헤럴드경제가 취재해봤다.
▶오전 6시30분부터 자습실 줄서고, 점심은 컵밥으로=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21일 오전 6시30분.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 시험 준비학원 입구에는 공시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오전 수업 시작은 9시부터지만 자습실 자리를 맡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 있는 것. 9급 행정직을 준비한다는 김원철(27) 씨는 “하루시작과 끝을 자습실에서 하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서 아침부터 줄서기 전쟁이 벌어진다”며 “늦게 나오는 날은 아예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자습실 자리를 맡고 나면 공시생들은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오전 수업을 준비한다. 근처의 고시식당을 이용하거나 간단한 샌드위치나 김밥 등을 먹는 사람까지 대부분의 공시생은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먹는 편이다. 김 씨는 “공부를 위해서는 체력이 정말 좋아야 한다”며 “귀찮다고 아침을 챙겨먹지 않으면 허기로 수업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아침은 꼭 챙겨먹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먹거리 해결은 공시생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식사시간대의 노량진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2500원짜리 컵밥(컵에 김치볶음밥 등을 간단하게 제공하는 간편식)으로 간단하게 때우는 사람부터 근처의 고시식당에서 월식(한 달 정액)을 끊어 먹는 사람까지 그 모습도 다양하다.
특히 노량진의 명물이 된 컵밥 가게들이 작년 4월 서울 동작구청의 철거방침으로 인해 위기를 겪었을 때는 공시생들이 나서서 구청 홈페이지에 철거를 하지 말라는 청원까지도 했다. 한 컵밥 가게에서 만난 박수원(23) 씨는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공시생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어 자주 찾는 편이라며 가격에 비해 양도 푸짐하고 맛도 있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컵밥이 간단한 식사제공으로 인기를 끈다면 고시식당은 좀 더 푸짐한 음식으로 공시생들에게 인기다. 한 고시식당은 뷔페형식으로 원하는 만큼 반찬을 제공하고 철판스테이크도 즉석에서 조리해 공시생들에게 제공한다.
가격도 싸다. 10끼 기준으로는 3만3000원, 한 끼에 3300원 꼴이다. 한 달 정액으로 제공하는 월식은 하루 2끼 기준으로 15만원이다. 한 고시식당 주인은 “사실 1인당 단가로 따지면 4000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팔아야 하지만 수지를 맞추기 위해 박리다매 전략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퀴퀴한 고시원은 옛말, 점심값보다 비싼 커피 마시는 신(新)공시생들=고시원하면 떠오르는 퀴퀴한 냄새,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 낡은 시설은 옛말이다. 노량진 일대의 고시원들은 대부분 30만원 중반대에 가격이 형성된다. 20만원대 방도 있긴 하지만 시설이 너무 낡아 학생들에게 외면받는다. 화장실 딸린 미니룸 수준의 고시원은 40만~50만원대다.
한 고시원관계자는 “2년 전 시설리모델링을 완료했다”며 “요즘은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물론, 서울에서 공부를 위해 오는 학생들도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이 청결과 방음 등 시설”이라고 말했다.
노량진 학원가 근처에는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커피전문점이다. 유명 커피전문점은 물론 테이크아웃 커피점도 조금만 길을 걷다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유명 커피전문점의 커피는 4000~5000원대로 컵밥 가격의 배에 달하기도 한다.
경찰직을 준비하는 박모(26) 씨는 “점심을 먹고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수험생활의 유일한 낙”이라며 “평소에는 혼자 공부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말할 시간도 없지만 같은 스터디원들과 점심시간 1시간 정도 대화를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말했다. 테이크아웃 커피점을 운영하는 진유혜(34ㆍ여) 씨는 “점심시간이면 2000원 정도하는 커피가 30~40잔 정도 팔린다”며 “커피뿐만 아니라 겨울에는 모과차, 유자차 등도 수험생들에게 인기”라고 말했다.
노량진의 커피전문점은 단순히 커피만 마시는 곳은 아니다. 공시생들의 스터디 장소는 물론, 애인과의 만남의 장소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단체석이 따로 마련된 한 커피전문점에는 공시생들이 5, 6명 정도 자리를 잡고 시험예상문제 등을 나눠 풀며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개인석에도 노트북으로 강의를 듣는 공시생들로 빈자리를 거의 찾기가 어려웠다.
▶공부만 하는 노량진 공시생? 가끔 술 한 잔, 당구 한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요=노량진은 학원과 고시원 등 공부에 관련된 시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술집은 물론, PC방, 당구장, 만화방 등 오락시설도 다수 존재한다. PC방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노량진 고시생이라고 해서 죄다 공부만 죽어라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며 “가끔 스트레스를 풀러 1~2시간 정도 게임을 하는 사람부터 월정액을 끊고 내내 죽치고 있는 사람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호프집을 운영하는 성인호(41) 씨는 “술 한 잔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공시생들이 단골손님”이라며 “만취하거나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가볍게 맥주 등으로 입가심 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량진에서 폭행 등으로 경찰서 신세를 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대부분 공무원 등을 준비하다보니 혹여 불이익을 받을 형사입건에 대해 아주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밤에도 쉬지 않고 스터디, 노량진 맥도날드는 스터디의 메카=대부분의 학원이 수업을 종료한 오후 10시의 노량진의 카페와 패스트푸드점은 공부하는 청년들로 붐빈다. 공시생들은 1분1초가 아까운 듯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나누고 펜을 놀렸다. 특히 대로변에 위치한 맥도날드는 끼니를 때우는 것은 물론 스터디를 하는 공시생들로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조모(23ㆍ여) 씨는 “인터넷을 통해 만난 스터디원들과 저녁이면 항상 맥도날드에서 모여 스터디를 한다”며 “저녁 10시부터 10시30분까지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벼 먼저 와서 자리를 잡아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정모(27) 씨도 “24시간 운영하는 맥도날드가 노량진 공시생들에게는 만남의 장소이자 스터디의 메카”라며 “학원에도 자습실 등이 있지만 다른 준비생들과 시험문제를 같이 공부하고 풀이법을 공유하기에는 맥도날드가 제격”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또 “노량진의 생활이 기억하기 싫은 악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나중에 합격하고 뒤돌아봤을 때 그때의 나를 있게 해준 치열했지만 열정을 갖고 살았던 곳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상범ㆍ정태란 기자/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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