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양처(賢母良妻)’ 전성시대는 지났다. ‘알파걸(학업과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성 못지않게 뛰어난 엘리트 여성)’이 사회곳곳에서 여성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고학력 여성들이 증가하고 이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의 사회참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하지만 위풍당당해 보이는 여성들의 일과 일상, 그 이면의 풍경은 조금 다르다. 일터에서는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부딪히며 고군분투 해야하고 워킹맘의 경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전쟁아닌 전쟁을 치뤄야 하는게 현실이다.
▶미흡한 출산ㆍ육아 지원정책이 여성 경력 단절한다=권미진(32ㆍ가명) 씨는 대학졸업 후 학원 강사로 일을 하다 지난해 결혼을 했다. 남편과 맞벌이를 하고 있는 권 씨는 최근 임신 사실을 알고 고민이 깊어졌다. 수업시간 내내 서서 일을 해야하는 등 임산부에게는 부담이 되는 업무환경에다가, 학원 원장은 “어차피 배가 불러오면 일을 쉬어야 하는거 아니냐. 그만 둘 거면 미리 알려달라”며 눈치를 줬기 때문이다. 그는 “제대로 된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을 기대할 수 없는 게 학원 강사들의 현실이다”며 한숨지었다.
하지만 쉽게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남편의 외벌이 만으로 살림을 꾸리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결혼을 하느라 생긴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태어날 아이 교육비를 생각하면 맞벌이는 필수다. 권 씨는 남편과 상의 끝에 결국 교육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아 강사일을 시작했는데 직업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터를 찾을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직장을 다니다 그만둔 경력단절여성은 197만 8000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혼여성 974만 7000명 중 20.3%에 해당한다. 2011년보다 7만 8000명(4.1%)이 늘어난 것이다. 경력단절여성이 직장을 그만둔 사유를 살펴보면 ▷결혼 92만8000명(46.9%) ▷육아 49만3000명(24.9%) ▷임신·출산 47만9000명(24.2%) 순이었다.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근로자들의 절대다수가 몰려있는 중소기업에서는 아직도 출산휴가를 주는 것을 꺼리고 그만두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육아휴직을 갖기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면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차별은 없어졌다 해도 암묵적인 차별은 존재하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미흡한 보육정책은 여성 경력 단절을 불러일으키는 큰 원인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미취업 여성과 취업 여성, 직장 여성과 가정주부에 대한 지원에 차이가 없다는 게 문제”라며 “금전적 지원에 그쳐서는 곤란하고 일하는 엄마들을 위해서는 야간 보육 등의 섬세한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 전업주부들을 위해서는 시간제 보육이나 일시 보육 등이 지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내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 또 다른 벽=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의 경우에도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실감하고 이직을 고민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직장인 7년차이자 모 대기업 해외영업팀에서 일하고 있는 이민경(33ㆍ가명) 씨는 “똑같이 입사해 비슷한 성과를 내도 남자 동기들이 먼저 승진 하는 경우가 많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여성으로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보니 이직이나 퇴직을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 지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은 대략 12~15%로 추정된다. 반면 국내 대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은 글로벌 기업의 4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한 취업포털사이트가 중견ㆍ중소기업 289개사를 대상으로 ‘여성직원 비율’을 조사한 결과 역시 직급이 높아질수록 여성직원 비율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무 중인 회사가 여성이 일하기 좋은 기업인지에 대해서는 19%가 ‘좋지 않은 편’이라고 답했다. 이유로는 ‘핵심 업무를 남성위주로 담당한다’(47.3%, 복수응답)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김 연구위원은 “국내에 있는 외국계 투자기업들을 보면 여성 임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인력운용방식이 투명하고 원칙이 명백한 외국계 기업에 비해 남성 위주의 문화가 남아있는 국내 기업들의 경우 여성 인재를 발탁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편”이라고 언급했다.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여성 인력이 비교적 차별이 적다고 알려진 공기업 및 국가공무원 채용에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민무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인력 정책 연구실장은 “채용 단계에서는 남녀차별 문제는 법적인 제재가 가해지면서 어느정도 해결됐지만 경력을 쌓고 승진을 하는 단계에서 겪는 차별은 여전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공기업의 경우에도 고위 여성 임원의 비율은 미미한 실정이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권은희 의원(새누리당)이 지난해 지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산하 공공기관의 여성임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현 정부의 지경부 산하 60개 기관 전체 임원 가운데 4.9%만이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 여성인력개발부 관계자는 “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A)’등을 통해 여성고용률을 제고하고 직장 내 여성의 간접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성 경력단절과 재취업 등의 정책적 사각지대를 보완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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