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 어색한 표현이지만, 꽃들이 싸우는 게 화투(花鬪)이다. 곧 명절이니 차례상을 물리고 몇몇 가정에서 꽃들의 전투가 벌어지겠다. 화투가 왜색(倭色)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16세기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서양식 카드(carta)가 일본에 들어왔고, 화투와 비슷한 ‘하나후다(花札)’로 변형되는 과정에, 19세기 초중반 유행했던 목판화 우키요에(憂世繪) 작품 속 일본 풍속이 반영되면서 오늘날과 비슷한 모습으로 정착했다. 우키요에 풍의 그림은 반 고흐와 모네, 마네, 르느와르 등 인상주의 화가들이 흉내내 보기도 했다.

▶왜색 화투, 일본선 외면

하나후다 1월에 나오는 소나무는 새해 벽두 집 앞에 꽂아두던 기복(祈福)의 신물(神物)이었고, 일본에 매화축제가 있던 2월엔 대표적인 봄의 전령인 꾀꼬리가 함께 했다. 정초부터 벚꽃이 피는 3월까지 기원과 축제를 상징하는 ‘만마쿠(慢幕)’이라는 휘장이 뒤덮었다. ‘홍단’이다.

4월(음력)은 흑싸리가 아니다. 일본 초여름의 대표적인 시어(詩語)인 등나무이다. 그래서 싸리나무라 여겨 거꾸로 쥐기 십상이다. 5월엔 붓꽃을 감상하는 일본의 풍취가 담겼고, 모란은 6월을 상징하는 꽃이다. 한국과 중국엔 향기없는 모란에 나비를 그려넣지 않는다.

7월은 싸리나무 숲을 누비는 사냥철이고, 8월은 우리의 추석과 같은 날 치르는 행사인 오츠키미(月見子) 풍경은 담았다. 9월은 술에 국화꽃을 넣어 마시는 중앙절을, 10월은 단풍철을 의미한다.

일본에서 11월은 비(雨)월이다. 우산을 든 작가 옆에서 버드나무에 오르려는 개구리의 노력을 교훈 삼아 그려넣은 작가 오노도후(小野道風)의 비광 그림은 일본 교과서에도 실렸다. 한국에선 ‘똥’이라 불리는 12월 오동은 일왕의 도포에 쓰이는 오동(梧桐)문양으로, 한 해를 찬란하게 매조지하는 유종의 미를 상징한다.

매국노 이완용이 화투로 수만원(요즘 수천억원대)의 노름판을 벌였다는 신문기사도 있었다. 이쯤되면 가장 일본스러운게 화투이다. 일제때 한국민을 우민화하고 일본 풍습을 세뇌시키기 위해 국내에 고의로 퍼뜨렸다는 설도 들린다. ‘왜색화투 추방 국민운동본부’라는 시민단체까지 생겼다.

▶웬만한 규칙, 한국서 개발

일본에서는 요즘 화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초기 교토(京都)의 고관대작들이 즐기기 시작했다가 거래, 접대, 로비가 이뤄진 게이샤의 유곽(遊廓)에서 크게 발전해 퇴폐의 상징이 되다보니 메이지 유신(維新) 정부가 19세기 후반 금지시켰다. 잠시 규제를 푸는 듯했으나, 제조 등 관련 업체에 엄청난 세금을 부과했고 20세기 들어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군인들 이외엔 아무도 하지 못하게 금지시켰다. 화투 제조사였던 닌텐도(任天堂)가 어쩔 수 없이 업종을 전환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현재 화투칠 줄 아는 한국민은 70%가량인데 비해 일본인은 5% 안팎으로 전해진다.

규칙은 한국에서 더 많이 개발됐다. 38선 때문에 3,8광땡이, 1.4 후퇴를 계기로 ‘일싸’가, 10.26 저격사건으로 ‘장팔’이, 힘 세다는 이유로 ‘장사(10.4)’가 승리의 족보로 떠올랐다. 일본에서 찬란한 12월을 상징하는 오동(梧桐)은 한국에서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계절 요인을 반영해 11월로 당겨졌다. 왜색을 조금이나마 지우려했는지, 일부 배경 그림과 색조를 없애고 무채색으로 단순화했다.

‘맞고’때 일본은 8장을 갖지만, 우리는 10장을 손에 쥔다. 일본은 빠른 달이 선(先)이지만, 우리는 밤단낮장 또는 밤장낮장 등 대체로 큰 숫자가 우선권을 쥔다. 일본에선 일정한 점수 이하에 2배를 물리지만 우리는 피박, 광박을 씌우고 ‘쓰리고’ 제도를 만들었다. 같은 패를 치고받는 속칭 ‘따닥’, 버린 패를 우연히 뒤집어 맞히는 ‘쪽’, 먹은 패 위에 같은 패가 뒤집어지는 ‘뻑’, 같은 패 3장을 보여주고 2배를 거는 ‘흔들기’와 ‘폭탄’, 같은 패 4장을 공개하는 4배 흔들기, 팔싸리, 2-2-2패 3배점제 등은 모두 한국에서 생산됐다.

▶“서양 카드의 원조는 한국의 투전패”

브루크린 박물관장이었던 스튜어트 컬린 박사는 일본내 화투 전성기이던 1893년, “카드의 원조가 한국의 수투(數鬪-투전패)로 추정된다”고 했다. 고스톱의 고(go)는 고대 우리나라 투전게임 ‘소몰이’ 용어 중 ‘이랴~’에서, 스톱(stop)은 ‘워~’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일본 히로시마대학 윤광봉 교수는 2003년 “서양 주사위의 원조는 한국의 윷놀이”라고 분석했다. 이들 분석의 진실을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게임이라는 것은 지구촌을 돌고돌아 변형 발전되므로 특정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은 이해할 수 있겠다.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됐는데, 화투의 정체를 어떻게 봐야할지 난감하다. ‘그만두라’는 계도성 주장은 자칫 자가당착에 빠질 수도 있겠다. 다행히 게임, 스마트폰, 여행 문화의 확산으로 고스톱 인구는 분명히 감소하고 있다. 그래도 명절, 민초들이 벌이는 ‘꽃들의 전쟁’은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아, ‘왜색의 찜찜함’을 없애보자는 뜻에서 다시 ‘한국형 화투’를 거론한다.

▶‘한국형 화투’ 실패를 넘어서...

7~8년전 한국형 화투 ‘한투’(사진), ‘소담화투’(사진) 등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인기를 끄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독도화투’는 의미는 좋지만, 손이 가지 않았다. 인터넷 고스톱 일부 버전에서도 한투 시도가 있었으나 이용객은 많지 않았다.

풍습을 바꾸는 일은 디자이너만의 의지로, 제조업자 혼자만의 아이디어로 해낼 수 없는 모양이다. 게임전문가-화가-마케터-카툰작가-투전 연구가-시민마니아가 머리를 맞대야만, 국민이 즐기고 싶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 놀자고 하는 것인데, 너무 진중해도 탈이다. ‘속 시원~한’ 화투판 빨리 봤으면 좋겠다. 가공무역, 응용과학, 문화 퓨전의 달인, 한국인 다운 끼를 발휘해, ‘한국형 화투’를 지구촌에 수출한다면 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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