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4회> 총칼 없는 전쟁 24
신희영이 유민식품의 회장으로 등극하게 되면 강준호를 기둥서방으로 봉할 것이란 구두계약은 이런 식으로 일단 성립된 셈이었다. 똑똑한 여자와 어리바리한 남자 간에 맺어진 계약치고는 그나마 양질의 계약이었다.
‘기가 막혀서… 감히 누굴 협박하려고 해?’
신희영은 전화를 끊자마자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또 한 마디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몰려온 때문이었다. 소파에 걸터앉은 그녀는 담배연기를 길게 허공으로 내뿜으며 지난 마디들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첫째 마디… 누가 뭐래도 가장 굵게 불거져 나온 마디는 남편 유민과의 이혼이었다.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긴 했어도 이혼절차는 순조로이 진행되었고 드디어 법원으로부터 이혼판결을 받아들었으니 첫 마디는 그나마 쉽게 넘어간 편이었다.
둘째 마디는 아들 유호성과의 관계였다. 그 녀석의 마음을 빼앗아 오는 일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의 전 재산을 위임받는 서류에 도장을 찍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녀석이 죽은 후에야 강남 아파트 두 채와 현금 7억 원을 그녀가 소유한다는 내용이었지만… 문서의 내용보다는 호성이가 도장을 찍는 순간의 마음을 믿었던 것이다.
‘그 녀석은 나를 확실한 보호자로 여기는 거야. 절대로 제 아버지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단 말이지.’
그녀는 이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불거진 마디는 슬슬 금이 가기 시작한 강준호와의 애정관계였다. 남녀관계라는 것이 원래부터 변화무쌍해서 염라대왕도 그 속사정을 모른다고 했던가? 하와이를 시작으로 프랑스, 남아공으로 이어지던 골프투어 당시만 해도 강준호만 보면 오금을 펴지 못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 ‘시간이 흐를수록 별 볼일 없어진단 말이야, 저 남자…’
이를테면 신희영에게 강준호는 츄잉 껌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이미 단물을 다 빨아먹었으니 쓰레기통을 찾아 뱉어버리고 싶을 따름이었는데,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한승우란 멋진 사내가 제 곁을 맴돌고 있더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러다가 하룻밤 자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래도 저 남자… 쓸 만한 구석이 있기는 있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녀는 지성과 본능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중이었다. 지성적으로 판단하자면 한승우가 으뜸이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것이 흠이랄까? 그는 곁에 놓아두고 밤낮으로 부려먹기엔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애송이에 불과했다. 세상을 낮과 밤으로 나누면 밤이 절반인데… 그래도 본능에 충실토록 써먹을 남자로는 강준호가 제격이었다는 말이다.
‘그래, 고민할 필요가 없지. ‘폴리 아모리’란 말도 있잖아?’
‘아모리’란 사랑이란 뜻의 라틴어이다. 따라서 ‘폴리 아모리’란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자는 뜻이 된다. 이미 일부일처제 식의 사랑 법에서 실패한 그녀였으므로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겠다는 과욕을 부릴 만도 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녀는 스테레오 전축처럼 양 옆으로 스피커를 갖춘 전축이 되고 싶을 따름이었다. 왜냐고? 그렇게 따질 필요조차도 없었다. 그녀는 이미 재벌로 등극한 입장이기 때문이었다.
‘좋아, 돈 많고 시간 많은데 아무러면 어때?’
그녀는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서 흐뭇한 마음에 빠져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게다가 실바람까지 불어오는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돈 많고, 시간 넉넉하고, 아직은 젊고 어여쁜 그녀가 슬슬 욕심을 내고 있었다. 알리바바 더보기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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