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임무가 군의 가장 중요한 임무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번 쓰촨성 지진을 거치면서 인민해방군은 ‘총’대신 ‘삽’을 통해 다시 ‘인민’의 지지를 얻고 있다. 전쟁이 아닌 대형 재난으로 인민해방군이‘ 재발견’됐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대를 보유한 나라다. 중국은 지난 16일 발표한 ‘2013년 국방백서’를 통해 육군은 85만명, 해군은 23만5000명, 공군은 39만8000명이라고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여기에 핵미사일 등 각종 미사일을 책임지는 제2포병부대, 당 중앙군사위원회에 소속돼 군 병력에 포함되는 무장경찰, 육전대(해병대)까지 포함하면 230만명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중국 당국의 공식적인 수치이고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중국 육군 수가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만명 이상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최대의 병력을 보유하는 중국은 군 현대화까지 가속화하면서 주변국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군사력 강화를 기반으로 댜오위다오(釣魚島ㆍ일본명 센카쿠) 등 남ㆍ동 중국해에서 영유권을 놓고 패권주의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나 군사적 도발행위 같은 ‘전투 임무’가 요즘 인민해방군의 가장 큰 임무는 아닌 듯하다. 물론 전투 임무가 군의 가장 중요한 임무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번 쓰촨(四川)성 지진을 보면 ‘비(非)전투 임무’ 역시 중요한 기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20일 쓰촨 성 루산(蘆山)현에서 리히터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하자 인민해방군 청두(成都)군구는 총 1만8000명의 군구 산하 장병과 무장경찰, 의료진을 신속하게 투입했고 최신장비도 총동원했다.

재난현장에 투입된 장병들은 칠흑 같은 어둠과 내리는 비에도 건물더미를 치우고 다친 사람을 구조하는 데 비지땀을 흘렸다. 이 과정에서 희생된 장병도 발생했다. 루산 현 주민들은 “주택과 건물이 무너진 곳에서는 어김없이 군인들이 있었다”면서 진심어린 감사를 표했다. 이번 지진을 통해 보여준 군의 빠르고 조직적인 대응은 상당한 효과를 내고 있다. 우선 톈안먼(天安門)사태 유혈진압, 각종 부정부패 등으로 이미지가 악화돼온 인민해방군이 이번 기회에 다시 ‘인민의 군대’로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나아가 공산당에 대한 구심력을 높이면서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데도 성공했다고 보인다.

인민해방군의 뿌리는 1927년 8월 1일 난창(南昌)봉기 이후 각 지역에서 혁명을 주창하며 일어난 ‘공농(工農)혁명군’이다. 그해 9월 마오쩌둥(毛澤東)은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일으킨 ‘추수폭동’이 실패하자 남은 병력을 이끌고 장시(江西)성 징강(井岡)산에 들어가 최초의 농촌근거지를 건설했다.

1928년 3월 공농혁명군을 이끌고 후난 성 구이둥(桂東)현 샤톈(沙田)진에 진입한 마오는 유명한 ‘3대 기율 6항 주의’를 선포했다. ‘군중으로부터 바늘 하나, 실 한 올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이 지침은 1947년 ‘3대 기율 8항 주의’로 확대됐다.

비참하리만치 가혹한 환경에서도 이 지침은 엄격히 준수되었고 후에 공산당이 대륙을 석권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총’이 군대의 모든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 지진을 거치면서 인민해방군은 총 대신 ‘삽’을 통해 다시 ‘인민’의 지지를 얻고 있다. 전쟁이 아닌 대형 재난으로 인민해방군이 ‘재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