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원과 함께 읽는 승정원일기<2>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뒤 정조는 효장세자(孝章世子)의 양자가 되었다. 효장세자는 열 살 때 죽은, 영조의 큰 아들이다. 1776년(영조 52) 1월 30일, 당시 왕세손(王世孫)이었던 정조는 영조의 명에 따라 효장궁(孝章宮)에 나아가 효장세자(孝章世子)에게 책보(冊寶)와 시호(諡號)를 올리는 예를 거행하였다. 이날 예를 거행하면서 임오년(1762, 영조38)에 죽은 생부 사도세자를 생각한다. 그리고 2월 4일에 할아버지인 영조에게 상소를 올려 조심스러우면서도 강한 어조로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기록을 《승정원일기》에서 지워줄 것을 청한다.

신에게는 너무도 가슴 아프고 절박한 사정이 있습니다. …… 아, 임오년의 처분은 바로 우리 성상께서 종묘사직을 위해 부득이 내리신 결단이었습니다. 신이 바르지 못한 무리들이 틈을 엿보려고 멋대로 추숭(追崇)하려는 의견을 낸 것에 휘말려 망녕되이 의리(義理)를 뒤집으려는 것이라면 이는 실로 전하의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전하의 죄인이 될 뿐만 아니라 종묘사직의 죄인이자 만고(萬古)의 죄인이 될 것입니다. 하늘의 상제(上帝)가 위에 계시고 종묘의 신령(神靈)이 옆에서 질정하고 계시니, 신이 어찌 감히 속이겠습니까. 다만 《승정원일기》로 말하면, 그 당시의 사실을 모두 다 기록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고 보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본 사람이 전하고 들은 사람이 논하다 보니 온 세상에 유포되어 모든 사람들이 보고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신의 애통한 마음은 마치 돌아갈 곳 없는 곤궁한 사람과도 같습니다.

상소를 읽은 영조는 세손의 청을 수용하여 그때의 일기를 승지 한 사람과 주서 한 사람이 함께 창의문(彰義門) 밖 차일암(遮日巖)에 나가서 지우라고 전교한다. 이 일로 인해 《승정원일기》에서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한 기사는 사라진다.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하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