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스위스의 조용한 시골 휴양지 다보스가 술렁이고 있다. 지구촌 거물급 인사들이 총출동하는 세계경제포럼(WEFㆍ일명 다보스포럼)이 22일(현지시간) 3박4일 일정으로 개막됐기 때문이다. 다보스포럼은 전 세계 100여 국가의 정ㆍ재계 및 학계 리더 2500여 명이 참석하는 ‘세계경제올림픽’으로 불린다.
올해 WEF 제44차 연차 총회의 공식 주제는 ‘세계의 재편(Reshaping the World)’이다. 기술혁신과 포용성장을 통한 소득 불균형 해소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주로 논의할 전망이다. 하지만 ‘세계 재편’의 속뜻은 ‘미국이 돌아왔다’는 의미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파이낸셜타임스(FT)의 논설위원 기드온 래치먼은 최근 “이번 다보스 포럼의 비공식 주제는 ‘미국이 돌아왔다’가 될 것”이라면서도 “미국의 경제 회복을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역할 부활과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래치먼은 “미국은 오히려 ‘세계 경찰관’ 역할에서 천천이 발을 빼고 있다”며 “이것이 오늘날 국제무대에서 급부상하는 가장 중요한 테마”라고 강조했다.
▶미국, 국제정치 패권 외면?=미국의 존재감은 곳곳에서 약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시리아 내전에서 군사 개입을 꺼린 것이 단적인 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대놓고 미국을 비난하고 있다.
유럽은 미국이 외교 정책의 중심축을 중동에서 아시아로 이동한 것을 두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과 유럽 동맹국에서 미국의 관심이 떠난 것 아니냐며 노심초사하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 외교정책에 아시아 동맹국들이 만족해 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아시아 파트너’로 굳게 믿었던 일본은 중국이 지난해 12월 돌연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을 때 미국이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것을 두고 석연치 않아 했다. 여기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 미국이 이례적으로 ‘실망’ 성명을 발표하자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필리핀 역시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스카보러 섬(Scarborough Shoal)을 중국이 실효 지배한 데 대해 미국이 방관한 것을 두고 버림 받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이같은 지적이 과장이라고 반발한다. 미국은 여전히 시리아 평화협상을 주도하고 있고, 이란 핵개발 문제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조정에 여전히 기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유럽과 아시아ㆍ태평양, 중동의 안보 현안에 대한 관심도 변함없다고 강변한다.
▶미국의 ‘新고립주의’ 선택 왜?=미국의 이같은 소극적 행태를 두고 신(新)고립주의(Neo Isolationalism)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신고립주의를 선택한 데는 ▷경제위기 극복 우선 ▷셰일혁명에 따른 에너지 자립 자신감 ▷국내 여론 반발 ▷ 중국 등의 요인이 작용했다.
이 가운데 셰일 붐으로 인한 에너지 독립은 미국이 다른 나라 현안에 간여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떨어뜨렸다. 과거 국제 유가 급등락에 미국 경제는 요동쳤지만 이제는 에너지 위협에서 자유로워졌다. 미국은 2015년 세계 최대 산유국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 내 여론은 해외보다 국내 이슈에 집중하길 바란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52%가 ”미국은 국제적으로 자국의 이슈에 전념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같은 미국인 비중은 과거에 없었던 사상 최대라고 퓨리서치의 브루스 스토크는 설명했다.
더욱이 21세기판 미국의 ‘불간섭’은 시대 흐름에 따른 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 등 신흥 세력의 부상에 미국이 조용히 적응해가는 새로운 국면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의도적 헤게모니 약화는 공공연하게 언급된다. 프랑스 로랑 파비위스 외무장관은 최근 한 강연에서 “미국은 더 이상 위기에 휘말리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동맹국들은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자력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는 가능성을 점차 계산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군사적인 관점에서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며 “만약 미국이 행동을 할수 없거나 하지 않으면 큰 위기를 더 빠르게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래치먼은 “이같은 징후가 이미 중동 시리아에서 아시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검은 대륙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이것이 다보스 포럼의 만찬 분위기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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