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배역 통해 허술하고 코믹한 본능 발산시키며 행복감 느껴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방송 3회만에 수목극 시청률 1위에 올랐다. ‘착않여‘는 서로 비슷한 다중인격 캐릭터에 로맨스를 버무린 MBC ‘킬미, 힐미’와 SBS ‘하이드 지킬, 나’와 달리 강순옥(김혜자) 김현숙(채시라) 정마리(이하나) 3대의 있을법한 이야기로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여기서 채시라는 고등학교때 퇴학을 당하고 열등감 속에 세상을 살아오며 딸 정마리를 최연소 박사까지 만들어낸 김현숙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며 극의 중심에 서있다.
“이번에는 현대물 액션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놉시스가 4개 정도 들어왔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게 더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시놉을 읽는 순간 ‘내가 찾던 게 이거구나. 좀 더 인간적인 모습, 겉으로 치장하는 모습이 아닌, 삶을 녹여내는 역할이었다. 이런 게 내가 찾던 역할이자 내가 해야하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김혜자 선배님과 함께 연기하게 된 것도 좋은 기회였다.”
채시라는 1~2회에서 액션과 호러물에 버금갈 정도로 힘든 신을 촬영하고도 얼굴엔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10층높이의 옥상에서 아찔한 장면을 찍고 다리에서 추락해 넘어지고, 추격신도 찍었다. 하지만 “고생이라기 보다는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숙이란 인물에 빠져있는 듯했다.
“현숙은 고교때 선생님때문에 찍혀 학교를 떠났기 때문에 평생 한이 맺혀있다. 우등생 언니와 비교당하면서 과거 울화가 삭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평생 남을 원망하고 있다고 해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결국 남탓만 할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인정할 건 인정하고, 내 안에서 용서할 건 용서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수긍하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을때 ‘그게 다가 아니었구나’하면서 새롭게 설 수 있을 때가 아마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채시라는 대본이 재밌고 무엇보다 술술 익힌다고 한다. 8부까지 다 읽었다고 했다. 채시라는 김인영 작가 작품은 처음이라면서 “대본에 우물이 있는 것 같다. 샘솟듯이 나온다”고 했다. 거기에 유현기 PD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배우들을 이끄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과하지 않는 완제품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어느새 함께 호흡을 맞추고 싶은 팀워크가구축됐다는 것이다.
채시라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가족물이지만 주말드라마보다는 오히려 미니(시리즈)답다고 했다. 2회말에는 김혜자가 자신의 남편이 사랑했던 여성 장미희(장모란 역)를 만나자마자 점프킥을 날리며 기절시켜 임팩트를 극대화했다.
“이 장면은 대본에서 미리 봤다. 진짜로 좋다고 느꼈다. 보통 이 상황에선 뺨 정도를 때리는데, 이건 시청자들에게 허를 찌른 거다. 예상보다 훨씬 더 큰 반응이 나오니 재밌더라.”
채시라는 그동안 카리스마가 있거나 지나치게 단정한 역할을 주로 해왔지만, 이번 배역을 통해 허술하고 코믹한, 그리고 인간적인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김인영 작가가 나를 마음껏 놀 수 있게 운동장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나도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 공감대를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채시라는 “현숙이 퇴학 무효신청을 하고, 나 선생님에게 가 ‘한을 풀러 왔다’고 할때, 나도 교복세대로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추억앞에서 눈물도 났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면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세대를 아우르면서 복고도 있고 치유도 있는 드라마다”고 말했다.
채시라는 2년 3개월간에 나온 이 드라마에서 잠을 3~4시간밖에 자지 못하며 촬영에 임하고 있지만, 얼굴은 더 좋아보였다. 더 많은 에너지와 엔돌핀이 나올 것 같았다. 채시라는 “현숙이 도박장에서 도망가고, 아버지 산소에서 상처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곳곳에 숨겨져 있는 코믹한 본능을 발산시키며 나 또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2000년 드라마 ‘여자만세‘이후 오랜만에 신나게 촬영하고 있는 게 나 스스로도 느껴진다”고 전했다.
채시라는 가족극과 시대물, 사극을 두루 거친 베테랑 연기자다. 80년대 방송된 가나초코렛 CF는 모든 남학생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채시라는 “가나초코렛 CF는 그분들에게는 향수이자 추억이고, 잊지 않고 각인돼 있는 한 컷이라면 나한테는 나를 있게 한 초석이다. 배우가 되게 한 작품은 ‘여명의 눈동자’이지만 고교생으로 연기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가나 CF 덕분이다”고 말했다. 채시라는 90년대에는 故 최진실과 김희애와 더불어 브라운관의 트로이카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이번 드라마에는 김혜자, 장미희 등 쟁쟁한 선배연기자분들이 계신다. 각자 몇십년씩 경험한 연기가 아우라로 묻어나있다. 이런 분들과 자연스럽게 오가는 대화속에서 뭔가를 느끼고 배워가는 게 있다. 나도 어느덧 선배가 됐는데, 후배들에게 해주고싶은 얘기도 있다. 후배가 기분 나쁘지 않게 자연스럽게 뜻을 전달해주고 싶다.”
연기 선배로서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 출연하고 있는 후배들, 이하나 송재림 등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중2 딸,초등학교2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한 채시라는 그동안 조용히 사회봉사에 참여해왔다. 사회봉사 얘기를 꺼내자 “이 정도 연기 생활을 했으면 당연한 거다. 특별한 건 아니다”면서 “저의 위치에서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다면 눈을 돌리게 된다”고 말했다.
채시라에게 행복이란 그런 것이다. 가족들과 일상을 보내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후원하기도 하는 삶이다. 아이들을 학교 보내주고 신문 잡지 보고, 음악 듣고, 낮잠 자는 일반 주부의 일상을 소중히 여긴다.
“엄마로서 아이 밥 챙겨주고 아이들을 열심히 돌본다. 대충 하는 건 싫다. 하지마 드라마를 하면서 연기에 집중하느라 육아에는 소홀해졌다.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생각한다.”
주부로, 아내로 열심히 살고 있는 채시라가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라는 드라마를 만나 새삼 자신이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또 다른 신세계를 접하고 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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