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나무상자 십여개가 소품의 전부인데도 배우들의 연기가 빈 무대를 꽉 채웠다. 처자식을 팽개치고 술집여자 때문에 울고불고하는 막장 아버지 이야기인데도 포복절도하며 웃다가 먹먹해지는 감동에 눈물이 고인다.
배우 조재현이 대학로에 지은 극장 수현재씨어터가 개관 1주년을 맞아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를 올렸다. 조재현이 “괴물들”이라고 표현한 김영필, 고수희, 황영희, 주인영 등 극단 골목길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이다.
수현재컴퍼니는 그동안 공효진, 강혜정, 김성령, 이순재, 신구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연극 ‘리타’, ‘미스프랑스’, ‘황금연못’ 등을 선보였다.
조재현 수현재컴퍼니 대표는 “배우생활을 하면서 자극을 받았던 작품 중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연극”이라며 1주년 기념작으로 이 작품을 선택했다.
주인공 경숙아베는 한국전쟁 당시 경숙어메와 경숙에게 전재산인 집을 지키라고 말하고 혼자 피난을 떠난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베가본드(방랑자) 인생”이라며 장구를 메고 집을 나간다. 애인이었던 술집여자 자야가 중국집 주방장과 살림을 차리자 울며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무작정 밉지만은 않다. 경숙아베에게는 전재산인 소를 내어주며 “니 인생의 장단을 두들기며 살라”던 경숙할베의 말에 눈물 흘렸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자야의 젓가락 장단에 어깨를 들썩이고 여기저기 방랑하며 살았어도 경숙이의 졸업식에 찾아와 구두를 건네고는 “잘 살아래이”라며 돌아선다.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잘 살아보려고 했지만 모진 세월 앞에 외로웠던 아버지 경숙아베도 관객들을 훌쩍이게 한다.
오는 4월 26일까지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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