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번 주제는 TV였다. 전 세계 12개국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매회 특정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JTBC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이다.
23일 방송분에선 그 가운데 각국의 독특한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러시아 국적의 일리야는 “해마다 12월 31일 오후 11시 55분에 대통령 연설을 한다”며 “정책이나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고, 올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는 덕담이 주를 이룬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는 오랜 시간동안 모든 대통령이 이 전통을 지켜왔다. 때문에 러시아 국민들에게 ‘대통령의 연설’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를 주는 하문화”다. 시청률도 굉장하다. 일리야는 “전 채널에서 방영해 무려 80%에 달한다”고 했다. 전 국민이 대통령의 덕담을 듣기 위해 TV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우리는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러시아처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아주 특별한 밤은 아니지만 국내의 경우 대통령이 출연하는 신년 기자회견이나 연설 방송의 시청률을 살펴보면 이 같은 기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1월 12일 낮에 진행된 ‘박근혜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동시 중계방송의 경우, 지상파 포함 11개 채널(지상파, 종편, 보도채널 등)의 전국 가구(유료 플랫폼 가입 + 비가입) 시청률은 16.1%(닐슨코리아 집계)였다. 이는 전년 동시중계 시청률이 기록한 15.6%보다 소폭 높은 수치로, 중계방송 시청률이 가장 높은 채널은 KBS 1TV(8.3%)였다.
역대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이나 국정연설 방송의 시청률을 비교해도 우리는 미미한 수치다. 지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전국 6개 도시 기준, 지상파 방송3사 시청률을 조사한 결과 역대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해는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첫 번째 신년 기자회견이었다. 방송 3사 합산 14.0%를 기록했다.
그 뒤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연설(13.6%)이었으며, 3위가 지난 1월 12일 진행됐던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지상파 3개사, 전국 6개 도시만 기준으로 했을 때 13.1%의 시청률이 나왔다. 4위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2004년 신년 기자회견(11.7%)이었으며, 5위는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11.1%)이었다. 그 뒤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2000년 신년기자회견(11.0%)가 이었다.
그에 반해 국내 안방 12월 31일 단골 프로그램인 지상파 방송3사 연말시상식의 시청률은 이보다 단연 높다. 대한민국 시청자들에게 한 해의 마무리는 방송사의 시상식인 셈이다.
지난해 12월 31일 KBS와 SBS에서 연기대상 시상식을 진행했고, MBC에선 가요대제전을 선보였다. 이 방송들을 토대로 3사 합산 시청률을 살펴보면 무려 3~4시간 동안 1, 2부 평균 각각 SBS 연기대상이 11.4%, KBS 연기대상이 10.4%, MBC가 7.1%를 기록했다. 3사 합산 시청률은 28.9%다.
몇 해 전만 해도 방송3사에선 시상식을 진행하며 서울 보신각이나 통일전망대를 이원 생중계해 보여줬으나 최근엔 이 같은 모습도 사라졌다. 상을 받으러 나온 가수들이 다소 어색한 듯 박수를 치며 새해를 맞이하고 인사를 전하거나, 가수들이 화려한 무대로 새날을 기다린다. 일리야의 이야기에 문득 방송3사 연말시상식이 정점을 향해 달려갈 때 현직 대통령이 돌연 등장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오래 전 인기를 끌었던 통신회사의 광고카피를 말하는 시청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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