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상윤 기자]참여정부 말기 치러진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역대급 ‘물수능(쉬운 수능)’이었다. 추정치이긴 하지만 대개 자연계 수험생이 치르는 수리영역 나형의 경우 만점자 비율이 4.16%나 됐다. 실수로 문제 하나를 틀리면 1등급이 2등급으로 떨어지는 시험이었다.

특히 성적표에는 영역ㆍ과목별 등급만 적혀 있었다. 때문에 대학 입시 전형 요소로서 기능을 사실상 상실한 수능이었다.

주요 대학들은 “(수능이)변별력이 없다”며 통합 교과형 논술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본고사를 부활시켰다.

1999년 도입 이래 대입 정책의 근간이 됐던 3불(不)정책(고교등급제ㆍ기여입학제ㆍ본고사 금지)도 같이 무너졌다.

이듬해 치러진 2009학년도 수능부터 성적표에는 다시 표준점수가 표기됐다.

갑자기 과거의 이 같은 대입 난맥상이 왜 또 다시 생각났을까.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의 수석비서관 회의 발언때문일 것이다.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교육부가 중장기적으로 안정적 난이도를 유지한다고 하면 변별력 측면에서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자율권을 갖는 방안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안정적 난이도의 수능은 곧 ‘쉬운 수능’을 의미한다는 것이 교육계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벌써부터 대입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대학들이 전형 요소 중 학교생활기록부를 사실상 신뢰하지 않는 상황인 데다, 수능마저 변별력이 줄어든다면 면접이나 논ㆍ구술의 비중이 커질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수능 도입 초기 같은 본격 본고사를 시행하지 않는다 해도, 과거처럼 수학 등의 과목이 조합된 통합 교과형 논술을 강화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벌써부터 논술학원들은 이번 발언을 기회로 논술 비중이 커질 거라며 ‘불안 마케팅’에 나설 조짐이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사교육 억제’를 명분으로 ‘쉬운 수능’을 내세운 교육당국의 명분이 한순간에 빛을 잃어가는 형국이다.

특히 지난달 서강대 등 20곳 가까운 서울 지역 주요 대학 총장이 모여 발족한 서울총장포럼의 회장인 이용구 중앙대 총장이 “기여입학제를 허용해 달라”며 ‘3불 폐지’를 내세운 상황에서 대학에 자율권을 주는 것이 옳은 방안일지는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수능이 쉬워진다고, 대학의 대입 자율권이 강화된다고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이 잦아들 수 있을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했다. 위정자의 교육 관련 발언은 신중해야 한다. ‘교생교사(敎生敎死ㆍ자녀 교육에 살고 죽음)’하는 학부모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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