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지난 3월 SBS는 대대적인 봄 개편을 단행했다. 개국 이래 23년간 유지해온 주말밤 9시대 드라마를 폐지하고 두 편의 예능 프로그램(토요일 ‘아빠를 부탁해’, 일요일 ‘웃음을 찾는 사람들’)을 배치했다. 지상파 방송사는 물론 케이블과 종편까지 뛰어들어 드라마 제작경쟁을 하는 때에 “예능, 교양 프로그램에 비해 가구시청률이 월등히 높은 드라마를 폐지하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었다”고 박기홍 SBS 편성기획팀장은 이야기한다.
“각사마다 드라마 제작편수가 늘다 보니 완성도 있는 대본을 구하는 것은 어려워졌어요. 라인업에 쫓겨 편성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제작비는 많이 드는데 완성도는 떨어지니 시청자는 외면하고 수익성도 부진하죠. 삼ㆍ사중고가 따르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편성 패턴의 변화를 도모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침체를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봤습니다.”
MBC에 주부 시청자를 완전히 빼앗긴 SBS 주말드라마의 오랜 부진은 지난 2013년 이후 숱한 폐지설로 이어졌다. 결정까지는 쉽지 않았다. 새로운 판을 만들기 위해 편성기획팀에선 내부의 우려를 잠재울 당위성의 확보가 시급했다.
“리서치 전문회사와의 협업으로 패널을 구성해 편성 전략을 세웠습니다. 주말에 볼 게 없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많았어요. 각사마다 치정 복수극과 통속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는데, 세 개의 채널에서 비슷한 드라마를 보는 것이 과연 옳은가, 젊은층의 시청욕구를 해소하는 것도 TV 다양성의 확보를 위한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죠.”
박 팀장에 따르면 토ㆍ일요일 오후 9시대는 해마다 가구시청률이 상승(2013년 71.8→2014년 72.2)하고 있는 시간대다. 주중 전 시간대를 포함해 전연령대, 특히 콘텐츠 소비력이 가장 왕성한 2049 계층의 시청률도 월등하며, 케이블과 종편을 포함해도 지상파의 시청률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시간대였다. 이미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에서 지상파의 견고한 편성틀을 깨고 ‘금토드라마’ 등을 만들며 시청층의 이탈을 유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SBS가 들고 나온 카드는 ‘막장드라마 퇴출’, 젊고 건강한 ‘가족 콘텐츠’의 배치였다.
그 결과 프라임타임에 3개의 프로그램이 신설되고, 2개의 프로그램이 시간대를 옮겼다. 개편 2주차의 성과가 괜찮다. 2~3%대의 시청률이 나왔던 SBS의 주말밤 9시는 ‘아빠를 부탁해’가 6.9%, ‘개그콘서트’(KBS2)와 경쟁하는 ‘웃찾사’가 6.2%까지 나온다.
주말드라마를 폐지한 자리에 들어간 두 편의 예능 프로그램의 편성 과정에서 가장 고심했던 것은 ‘콘텐츠 경쟁력’, '화제성'이었다. 기존의 중장년층 시청자를 뛰어넘어 젊은 세대에게까지 소구할 수 있는 콘텐츠를 배치해야한다는 판단은 시청층 분석으로 이어졌다. 편성기획팀에선 “아빠와 딸의 교감을 보여주는 관찰예능이 이 시간대 시청자 구성과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다만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일요일 오후 8시 45분에 편성, ‘개그콘서트’와 40분간 맞붙는 경쟁을 하는 것에 대해선 고민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최근 ‘웃찾사’의 경쟁력에 비춰 충분히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나왔다. 박 팀장은 “코미디 프로그램은 예능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콘텐츠”라며 “시뮬레이션과 시청행태 조사를 통해 일요일에 코미디 수요 계층이 형성돼있다고 봤다. SBS의 입장에서 ‘웃찾사’는 알앤디(R&D, Research And Development)였다. 단기간의 추월이 가능하진 않더라도, 코너별 재핑이 활발히 일어나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특성을 감안하면 향후 6개월 사이 경쟁력 우위를 점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SBS 내부에선 시청자 반응과 경쟁력, 수익성을 고려하니 “주말밤이 살아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기존 가구시청률에만 집착하던 사고에서 벗어난 ‘발상의 전환’은 젊은 시청층 사이의 바이럴 마케팅을 이끌었으며, “시청자들이 지상파 방송사에 공익성과 참신성을 두루 갖춘 콘텐츠를 생산하길 바라는 상반된 기대심리”도 충족시켰다.
“TV고령화 시대로 접어든 때에 가구시청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어요. 적극적인 콘텐츠 소비계층을 공략하는 젊고 건강한 예능 프로그램이 2~30%대의 통속드라마보다 훨씬 가치있다고 본거죠.”
이번 SBS의 봄 개편은 지상파 방송3사의 경쟁 체제가 만든 편성 패러다임을 흔들며 하나의 시사점을 남겼다. 다채널 경쟁시대에돌입하며 끊임없이 거론됐던 지상파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의 하나로 새로운 편성틀을 만드는 혁신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박 팀장은 “지상파는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매체가 됐다. 선제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올드한 매체로 남을 수도 있다”며 “편성은 곧 매체 경쟁력이다.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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