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맹서의 장소…참을수 없는 위로의 가벼움 경계해야
[헤럴드경제=서경원ㆍ이세진 기자]‘경수♡승연’, ‘민수-채연, 우리사랑 영원히’
‘자살다리’로 유명해진 마포대교가 어느새 커플들이 변치않는 사랑을 기약하는 성지(聖地)로 변모하고 있다.
이별에 대한 아픔을 딛지 못하고 여러 극단적 선택이 벌어졌던 이곳에서 거꾸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연인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밤 7시 50분. 서울 마포대교 북단 초입에 위치하나 표지석엔 많은 연인들이 자신의 이름들 사이에 하트를 그려넣으며 애정을 기리는 글들이 빼곡히 차 있었다.
다리에 올라서니 데이트 나온 연인들의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한강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커플들, 팔짱채 걸으며 주변 경광을 감상하는 연인들, 난간에 기대어 대화를 이어가는 남녀들로 ‘자살다리’라기보단 ‘사랑의 다리’라는 닉네임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친구들과의 우정을 다지는 모습도 연출됐다. 기다란 셀카봉을 사용해 사진을 찍거나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이 많았다.
다리에서 만난 여대생 이수연(19) 씨는 “친구하고 여의도공원 놀러왔다가 야경을 보고 싶어 올라왔다”며 “다리 난간에 말 걸듯이 ‘커피 한잔해’라는 문구들은 울컥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홀로 바람을 쐬거나 음악을 들으며 운동을 즐기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회사원 김모(32) 씨는 “자전거로 다리를 건넜다 오면 바람도 쐴 수 있어 딱 좋다”며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살을 많이 한다고 하는 유명세에 사람들이 더 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리를 더 걸었다. 동선에 따라 조명과 함께 설치된 글귀들이 보인다. ‘밥은 먹었어?’, ‘많이 힘들었구나’, ‘흘러갈 거예요’ 등을 보며 이곳이 자살로 유명한 곳이란 사실을 다시 실감케 했다.
교량 3분의 1 지점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에 멈춰섰다. 이곳을 잠시 서성이자 순찰 차량이 멈춰선 뒤 “무슨 일로 오셨냐”며 말을 걸어왔다.
이 경찰은 차에서 내려 본인이 기자임을 확인한 뒤 “자살하려는 사람은 걸음걸이만 봐도 알겠더라”며 “마포대교가 본의 아닌 유명세를 타서 걱정”이라고 전했다.
생명의 전화 뒷편의 철재 가드레일과 주변 난간 기둥에도 여러가지 글들로 도배돼 있었다.
주로 사랑과 우정을 기원하는 글들이 많았다. 자살자들을 위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힘내세요’, ‘죽지 말아요’, ‘좋은일이 생길꺼야, 조금 더 기다려봐’,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등 어떻게든 삶을 비관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문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런 글들이 자살자들에겐 피상적 위로로 다가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의도에서 마포 자택으로 귀가하는 길에 만난 회사원 이상봉(49) 씨도 “다리에서 본 글들은 중장년층이 보기엔 대부분 간지러운 내용들”이라며 “차라리 윤동주의 ‘서시’ 같은 시를 적어 놓으면 생명에 대한 울림이 더 커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운동하러 나온 대학생 김수인(25) 양도 “다리 난간에 저런 문구들이 있어서 오히려 여기가 자살하는 곳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다”며 “너무 과한 느낌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자살자들의 이성적 판단을 도울 수 있는 글들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은 “단순히 죽지 말라는 위로의 글 만으로는 자살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세우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조현상 연세대 교수(정신의학과)도 “자살시도자들의 심리를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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