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충무로의 ‘잘 나가는’ 제작자도 흥행 예측은 늘 조심스럽다. 장원석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대표(39)는 천만 영화 ‘왕의 남자’를 비롯해 ‘의형제’, ‘최종병기 활’,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끝까지 간다’ 등을 성공시키며 충무로의 흥행 귀재로 자리잡은 인물이다. 그를 만난 13일은 비에이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영화 ‘악의 연대기’(감독 백운학)의 개봉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흥행 감(感)을 묻는 질문에 그는 “귀신도 모른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 차례 흥행작을 만들어낸 그도, 관객에게 바통이 넘어간 뒤엔 결과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열 번 흥행해도 한 번 실패는 참담”=장원석 대표에게 지난 해 ‘끝까지 간다’의 성공은 그 의미가 더욱 특별했다. 영화는 대중적인 흥행(누적 345만 명)은 물론, 국내외 영화제의 부름을 받으며 평단의 사랑까지 받았다. 개봉 당시 배우 이선균·조진웅의 티켓 파워가 엄청났던 것도 아니었고, 김성훈 감독 역시 신인이나 다름 없는 인지도였다. 그럼에도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장 대표의 마음을 움직였다.

“10년 넘게 이 바닥에서 일한 전문가들도 흥행 예측하는 게 항상 맞진 않아요. 시나리오만 보고 흥행을 예측한다는 것도 신(神)의 경지인 거고, ‘끝까지 간다’는 손익분기점은 넘기지 않을까 생각했죠. 오직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생각이었는데, 대중은 물론이고 평단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었다는 게 보람 있었죠.”

열 번을 성공해도 단 한 차례의 실패는 뼈 아픈 법이다. 지난 1월 개봉한 ‘허삼관’(감독 하정우)은 장 대표가 프로듀서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작품이다. 200만 명 이상은 모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100만에도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흥행에 실패하면 참담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게 보람인데, 흥행에 실패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았다는 얘기잖아요. 참여한 사람들의 노력을 생각하면 미안해지고, 투자된 자본을 회수하지 못하는 것에 도의적 책임감도 따르죠. 정신적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쉬지 않고 작품을 하는 거예요.”

▶“영화를 만들 때 스스로 쓸모있는 사람 같아”=장원석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길 좋아했다. 영화 관람이 취미가 된 건 가정 환경의 영향이 컸다. 집에서 기사식당을 운영했는데, 당시엔 기사들이 밥을 먹을 때 비디오를 틀어줬다고. 자연스럽게 비디오를 많이 봤고, 중학교에 들어가선 거의 매주 영화를 보러 다녔다. 진로를 결정할 때가 되자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일에 눈길이 갔다. 감독 데뷔도 준비했지만, 결국 프로듀서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프로듀서는 돈과 사람, 영화에 투입된 여러 요소를 관리해야 해요. 사람들과의 소통 능력과 사회성이 중요하죠. 또 연출은 영화 창작과 관련된 고민을 하는 데 반해, 제작은 한정된 예산에 맞추고 언제까지 촬영을 끝내는 등 비즈니스적인 목표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맡은 일에 대한 성실함과 책임감도 필요해요.”

한 편의 영화를 위해 제작부가 하는 일은 ‘뒤치닥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독이나 배우처럼 작품 전면에 드러나진 않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해야 하는 고된 일이 많다.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막노동도 하고 공장도 다녀봤는데 힘들지 않은 일이 없었다”며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회의감도 사라진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칭찬해 줄 때면, 내가 사회에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느낌도 받는다”고 털어놨다.

▶“돈 벌 것 같은 영화는 망하고, 재미있는 영화는 돈을 벌죠”=인터뷰 도중 장원석 대표는 틈틈이 아이디어를 정리해온 에버노트 앱을 보여줬다. 거기엔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활용해도 좋을 만한 자작시도 있었다. 그는 영화의 소재나 인상적인 장면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늘 메모한다. TV를 즐겨보지 않지만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은 챙겨본다고. ‘미생’이나 ‘삼시세끼’를 보며 어떻게 대중들의 마음을 훔쳤는지 고민한다. 지난 해 1000만 관객을 모은 ‘국제시장’도 네 번이나 관람했다. 어느 타이밍에 관객들이 웃고 우는 지 관찰한다.

“동시대 사람들이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살피고 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트렌드를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햇수로 20년 째 영화 제작 일을 하면서, 그는 권위가 몸에 배는 것을 경계한다. 지위가 높아질 수록 권위가 실리기 마련인데, 그러다보면 소통이 어려워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또 그는 상대 회사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다보면, 궁극적으로 내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눈 앞의 이익 때문에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네트워크가 약해지면 고립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익보다는 가치를 좇는 게 목표예요. 돈을 벌 것 같은 영화는 망하고, 재미있는 영화는 돈을 벌더라고요.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겠다’고 생각하면 돈은 따라오는 것 같아요.”

/ham@heraldcorp.com

▶장원석 대표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기획 / ‘의형제’(2010), ‘최종병기 활’(2011), ‘퍼펙트게임’(2011), ‘점쟁이들’(2012),‘내가 살인범이다’(2012), ‘집으로 가는 길’(2013), ‘끝까지 간다’(2014), ‘악의 연대기’(2015) 등 제작 / ‘비스티 보이즈’(2008), ‘허삼관’(2014)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