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터(free+arbeiter)족’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일정한 직업없이 돈이 필요할 때만 아르바이트를 해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일본 젊은 부류를 지칭하는 합성어다. 10여년 전 국내 언론에 소개됐다.
치기(稚氣)가 발동했다. 자유란 단어에 혹해 첫 직장을 그만뒀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긴 힘들었고, 자리가 있다손 치더라도 월급이 쥐꼬리였다. 새 직장을 구하기까지 4개월간 공사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낭패를 봤다. 어디든 얽매이는 게 행복한 거란 교훈을 얻었다.
정규직이 됐으니 ‘나만 아니면 된다’고 안도할 수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암울하다. 월 140여만원을 받고 사는 비정규직이 600만명이다. 전체 일자리(2500만개)의 24%다. 이들은 1억원을 모으려면 70개월 동안 한 푼도 쓰지 않아야 한다. 내집 마련은 현생에선 이룰 수 없는 꿈이다. 나라가 어떻게 해서든 묘안을 짜내려 하지만,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어렵다고 하소연하지만 삼성ㆍ현대차 등 굴지의 기업은 그래도 잘 나간다. 무슨 수를 쓰든 이들 기업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 고액연봉을 받으려는 건 인지상정이다.
압축성장의 그늘이다. 사회 전반의 체력을 기르기보단 대표선수 몇몇 육성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부작용이 속출하는 것이다. 독일처럼 강소기업인 ‘히든챔피언’을 키워야 한다고 난리이지만, 40년 이상 유지한 대기업 중심의 ‘돌격 앞으로’ 습관을 단박에 끊을 순 없다. 경제는 숨을 고르며 전열을 정비하게끔 이젠 정치가 힘 좀 써야 할 때다.
정경유착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우선순위를 정해 나라를 순치(馴致)해야 한다는 얘기다. 무슨 얼빠진 소리냐고 하겠지만, 야당에서 희망을 본다. 계파 수장이 편지로 상대를 힐난하는 걸 보면 이런 유치한 일이 없다.
‘분열의 DNA가 박혀 있어 저런다’는 여당의 지적도 맞다. ‘당권재민 혁신위원회’라는 걸 띄워 내홍을 임시 봉합한 측면도 있지만, 야당은 어쨌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입 닫지 않고 치고 받고 싸워 답을 내는 게 의회민주주의 본질이기도 하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국면에서 그나마 발 빠르게 대처한 건 야당이었단 점도 이들의 내공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준다.
불안한 건 여당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훈수정치에 오락가락한다.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정부 손발 다 묶어 놓는 개악이라고 청와대는 발끈한다. 국회의 결정은 어쨌든 존중해야 하고, 문제가 있으면 정해진 절차를 밟으면 된다. 당과 대통령은 한 몸이라는 말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 그야말로 미봉책이다. 할 말하는 유승민 원내대표만 고립돼 있는 형국이다. 아무리 성과내기가 급하더라도 정치까지 압축하려 해선 곤란하다.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은 생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헛되게 세월을 보낸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남는 게 있을 것이다. 문제는 헛되게 세월을 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훗날 소중한 체험으로 살려가느냐에 있다”고. 속도보다 중요한 건 내용이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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