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한 사립대 온라인 커뮤니티에 ‘커플통장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통장을 만든 지 2∼3달 되었다는 A(여)씨는 “남자친구가 나보다 용돈을 적게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커플통장 만들었다”며 “데이트 비용을 덜 쓰는 남친이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기가 불편했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상대방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헤아릴 줄 안다면 남자친구의 돈도 같이 아끼는 게 당연한 거 같다”고 했다. 마침 이 커뮤니티는 데이트 비용 문제로 험한 말이 오가는 등 시끄러웠지만, 이 글에는 ‘보기 좋다’, ‘현명하다’ 등 환영 일색의 댓글이 달렸다.
데이트 폭력 문제를 포함해 ‘김치녀’, ‘쪼잔남’ 같은 남녀갈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데이트 비용 문제다.
실제로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 이상(72.2%)이 ‘데이트 비용 문제로 헤어질 수 있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이같은 데이트 비용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최근 젊은 연인들 사이에선 ‘커플통장’이 유행하고 있다.
‘커플통장’은 연인이 돈을 각출해서 예금해놓고, 데이트 비용을 지불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결국 데이트 비용을 절반씩 내는 셈이다.
커플통장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일단 ‘돈은 남자가 내는 것’이라는 통념에 거부감을 갖는 젊은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회사원 홍모(32)씨는 “영화나 식사는 물론, 큰 돈이 드는 여행을 갈 경우에도 돈 배분이 애매해서 거의 다 내가 지불하는 편”이라며 “돈이 아깝다기보다는 똑같이 직장을 다니는데 지갑을 열지 않는 여자친구가 약간 얄미울 때가 종종 있다”고 했다.
여성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사립대 학생 박수련(23ㆍ여)씨는 “요즘 ‘김치녀’라고 불리우는 여자는 여자들 사이에서도 욕을 먹는 무개념녀 취급을 받는다”고 했다.
실제 올해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20대 대학생 943명에게 데이트 비용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남녀 5대 5로 분담한다’는 응답이 37.4%로 1위였다. 이는 2012년(14.2%) 조사때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3년 전 1위였던 ‘남녀 7대 3’이란 응답은 올해 16.6%로 3위에 그쳤다.
한국 정서와 맞아떨어진다는 점도 커플통장 사용이 증가하는 이유로 꼽힌다. 정모(25ㆍ여)씨는 “서양식 ‘더치페이’가 가장 깔끔하고 마음이 편한데 왠지 너무 정나미가 떨어지는 행동인 것 같아서 꺼려진다”며 “우리나라 정서를 고려하면 간접적으로 더치페이를 하는 커플통장이 더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커플통장을 남녀 관계를 평등하고 독립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대단히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안이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돈은 사람의 관계를 종속관계로 만드느냐, 독립관계로 만드느냐를 결정짓는데 남녀 관계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남성의 일방적인 데이트 비용 지불은 남성으로 하여금 ‘돈을 쓴 만큼 나에게 섹스를 해줘야 한다’는 성매매적 계산까지 하게 만든다”고 했다. 안 교수는 “이에 비해 커플통장은 연인이 서로 당당하고 평등한 관계를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매우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했다.
이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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