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소탈한 성품·탁월한 외교력 “역사 반성”진보적 행보 정부에 ‘미운털’ 후미히토, 아들 탄생후 지지도 급등 법안제안 등 적극적 행보 보수층 ‘신임’
정치와 거리가 먼 일본 왕실이지만, 현실정치에서 자유로울 수만도 없다. 일왕이 여전이 국민 상당수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키히토 일왕의 후계를 둘러싼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와 후미히토(文仁) 왕자의 보이지 않는 대립은 왕실과 현실정치 간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왕위계승 서열 1위의 나루히토 왕세자는 왕실 전통을 깨고 현직 외교관이던 오와다 마사코를 부인으로 맞아들일 정도로 개혁적이고 소탈하다. 또 외교력이 뛰어나 쇼와(昭和)일왕과 아키히토(明仁)일왕을 대신해 왕실 외교 업무도 맡고 있다.
하지만 아베신조(安倍 晋三) 총리 등 보수세력에게는 눈엣가시다. 특히 지난 2월 나루히토 왕세자가 그의 생일날 한 발언은 열도를 발칵 뒤집었다.
그는 “앞선 전쟁으로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많은 이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고 많은 사람이 고통과 큰 슬픔을 겪은 것을 매우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며 “전쟁의 참혹함을 두 번 다시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과거의 역사를 깊이 인식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일본)는 전쟁의 참화를 거쳐 전후 헌법을 기초로 노력을 쌓아올려 평화와 번영을 향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4년에는 아베 내각의 개헌 움직임에 대해 “지금의 일본은 전후 일본 헌법을 기초로 삼아 쌓아올려졌고 평화와 번영을 향유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헌법을 지키는 입장에 서서 필요한 조언을 얻으면서 일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이 때문에 일본 보수층 사이에서는 다음 왕위를 나루히토 왕세자가 아닌 후미히토 왕자에게 계승할 수 없냐는 의견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국제연합(UN) ‘물과 위생에 관한 사무총장 자문위원회(UNSAB)’ 명예총재를 역임할 만큼 학식도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지난 4월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 물포럼에 참석하지는 못했다. 당시 일본 정부관계자는 “경호 문제와 정치관계 등을 고려해” 행사 불참을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아베 내각이 나루히토 왕세자의 방한을 제지했을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반면 후미히토 왕자는 한때 ‘난봉꾼’이라 불릴 정도로 왕실의 골칫덩이였다. 그런데 2006년 갑자기 지지도가 상승한다. 41년 만에 왕실 후계를 이을 아들 히사히토를 얻은 덕분이다. 당시 여성의 왕위계승이라도 검토해야한다던 일본 정부는 히사히토 왕손이 태어나자 “후계는 남성이 잇는다”며 모든 논의를 덮었다.
후미히토 왕자의 행보도 눈에 띄게 바뀌었다. 그는 지난 2011년 아키히토 일왕이 기관지 폐렴과 고열로 입원한 가운데 맞은 자신의 46번째 생일에 “왕도 정년을 정해야 하고 이 기준을 더 논의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는 ‘논의’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를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일왕의 혈통을 이어갈 아들이 있는 자신의 왕위 계승 가능성을 제기하고자 하는 계산이라는 분석이 제기됐었다.
그런데 이같은 후미히토의 행보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게 정치권과의 관계다. 후미히토 왕자는 보수적인 행보를 통해 보수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보수세력은 후미히토 왕자를 통해 평화헌법 개정과 재무장 등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 내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왕실 전통과 다른 나루히토 왕세자와 마사코 왕세자비의 행보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며 왕실 내 보수세력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나루히토 왕세자 대신 일본 왕실회의의원과 예비의원으로서 왕실을 위한 각종 법안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그 반증이라는 분석이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왕위계승 1순위자임에도 지난 2003년 이후 왕실 의원직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
세계적인 종교학자이자 황실규정을 정하는 아베 총리직속 협의체의 일원인 야마오리 데쓰오(山折哲雄)는 후미히토의 왕위계승을 주장하는 글을 월간지 ‘신초 45’ 3월호(2013년)에 실었다.
이 글에서 그는 “ 마사코 왕세자비는 10년째 요양중이고 왕실 적응장애가 심각해 왕위는 후미히토가 적임이니 왕세자 전하는 퇴위하십시오”라고 주장했다.
[자료=궁내청(宮內廳)/산케이(産經)신문]
문재연 기자/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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