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원승일 기자] 노동계의 반발이 있을 때마다 노사정위원회 대화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독일은 노사정 간 타협에 실패하면서 정부 주도의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했다. 우리나라 또한 쟁점이 있을 때마다 노사정위의 결렬, 대화 재개가 반복되면서 결국에는 정부가 독자적인 개혁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가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에 속도를 내자 한국노총은 크게 반발하며 노사정 대화에 불참 의사까지 내비쳤다. 지난 1일 노사정위가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과 관련해 별도 협의체를 구성하는 방안을 협의키로 하면서 노사정 대화가 재개됐지만 노사정 간 이견이 큰 쟁점들이 남아 있어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독일 정부는 지난 2003~2005년 실업급여 축소, 해고요건 완화, 임시직 고용 규제 완화 등 노동시장 구조를 바꾸는 하르츠 개혁을 단행했다. 당시 슈뢰더 정권은 노사정 틀로 풀리지 않자 다수의 경영계와 소수의 노동계, 전문가와 정치인 등으로 노동개혁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를 통해 실업수당 지급기간을 32개월에서 12개월로 줄이는 데 합의하고, 해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노동시장 개혁을 이뤄냈다. 현재 진행 중인 우리나라의 노사정 타협 과정을 보면 독일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노사정 간 이견이 큰 쟁점이 생길때마다 갈등이 불거졌고, 정부는 거듭 독자적인 노동개혁을 추진할 뜻을 내비쳐 왔다. 따라서 정부 주도로 노동개혁에 성공한 독일의 하르츠 모델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노사정 모두 협상 자세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노사정 모두 기득권을 내려놓고, 노동개혁이란 큰 틀에서 양보와 합의를 통해 대승적 차원의 대타협을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노사정이 일정 시한 내 대타협을 이뤄내려는 조급증에서 벗어나 의제를 좁히고,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10일까지 노동개혁 관련 입법 추진, 연내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목표로 서두르다보면 자칫 형식적인 수준의 알맹이 없는 노동개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통상임금 범위, 근로시간 단축,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부터 우선 논의하고, 비정규직 문제나 일반해고 지침,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 민감한 사안들은 차후에 논의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개혁의 모든 과제를 일정 시한 내에 결론을 내려 하지 말고 우선 논의 과제와 중장기적 과제로 분류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대립되는 쟁점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치열한 협상 과정을 통해 접점을 찾아야지 정규직 기득권에 매몰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정부 주도의 조급한 개혁 추진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노동개혁을 위한 대타협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사정과 더불어 민주노총, 청년, 비정규직 근로자, 야당도 참여하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