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도(3명)를 비롯 파키스탄(1명)과 인도네시아(1명), 말레이시아(1명) 등 아시아인 7명이 재산 절반 기부를 약속했다. 아시아가 신흥시장으로 발돋움하면서 자산을 축적한 아시아권의 부호들이 늘어나면서다. 아쉽게도 한국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 아시아 부호들의 기부에선 한 가지 특징이 감지된다. 서양 부호들이 빈곤, 질병, 기아 퇴치 등 글로벌 이슈에 집중한다면 아시아 부호들의 기부는 자신의 나라가 당면한 상황이나 사회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고령화사회에 대한 고민부터, 글로벌 인재의 양성, 국가의 영어경쟁력 향상까지 세밀하게 조준된 기부활동이 눈에 띈다.
▶ “영어는 필수”, 영어교육에 기부한 말레이시아 부호=일찌감치 더 기빙 플렛지에 동참한 말레이시아 억만장자 빈센트 탄(Vincent Tan) 버자야그룹 회장은 자국 젊은이들의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 목적이 다소 특이하지만 이는 국가적 상황에서 비롯됐다.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말레이시아는 1971년까지 영어를 공식 언어로 썼지만 1978년부터 공립학교에서 영어교육을 배제했다. 그 결과 영어실력이 퇴보하면서 다국적 기업들이 말레이시아에서 사업하기를 꺼려하고, 젊은이들도 글로벌 무대로 나가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 2003년 뒤늦게 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영어로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실시했지만 교사부터 영어가 미숙해 프로그램은 결국 폐지되는데 이르렀다.
이를 보다못한 탄 회장은 “영어는 글로벌 경제언어다. 청년들이 세계에 진출해 자리 잡으려면 유창한 영어실력은 필수”라며 영어교육 활성화를 위한 자선사업에 나섰다. 그는 현재 모든 과정을 영어로 가르치는 학교나 단체에 자신의 돈을 기부하고 있다.
16세에 은행원으로 일을 시작한 탄 회장은 현재 부동산, 호텔 등 3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회사의 주인이다. 맥도널드, 스타벅스, 파파존스 같은 글로벌 외식 프랜차이즈도 직접 말레이시아에 들여왔는데 그는 자신의 능숙한 영어실력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탄 회장이 영어교육을 중요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복지산업 살리기 나선 日 여성부호=인구가 급감하고 있는 일본은 미래의 노동력 부족을 걱정하고 있는 처지다. 특히, 초고령화로 복지에 대한 수요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복지산업 노동자는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시노하라 요시코(篠原欣子) 템프스태프 회장이 기부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시노하라 회장은 지난 해 자신의 회사 주식 5.6%(약 1700억원)를 베이비시터와 간병인, 간호사, 장애인 활동보조인 등 복지 노동자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이미 2007년엔 복지인력을 양성하는 학교를 직접 세우기도 했다. 조산사로 일했던 어머니와 중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가 그의 기부결심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사실 시노하라 회장이 부를 일군 바탕도 ‘노동력’과 관련 있다. 비서로 일했던 시노하라 회장은 호주에서 인력파견업을 처음 보고 1973년 일본에 와서 파견업체 템프스태프를 창업했다. 외국계 기업을 중심으로 템프스태프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인력파견 요청은 늘어났고, 시노하라 회장도 큰돈을 벌 수 있었다. 현재 포브스에 등재된 일본 여성부호들 중 유일하게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 해외파 고급인재 양성하는 中 억만장자 부부=시노하라 회장이 국내 인력양성에 집중하고 있다면, 중국 부동산 개발회사 ‘소호차이나’의 공동창업자인 판스이(潘石屹)-장신(張欣) 부부는 글로벌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다. 작년 소호차이나 재단을 통해 1200억원을 기부했다. 기부 대상은 해외 유학생들이었다. 부부는 하버드대ㆍ예일대 등 세계 명문대에 재학 중인 중국 학생들의 연구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거액을 내놓는다고 설명했다.
이는 요즘 중국이 점하고 있는 글로벌 위상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개혁개방 이후 세계와 경쟁하고 있는 중국은 지속적으로 고급인재를 수혈해 국가적 영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미 중국 사회과학원은 2007년 ‘중국재능개발’ 보고서에서 “일류 과학자와 연구인력이 부족하면 국가 경제와 사회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며 해외에 나가있는 고급인재 유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장신 최고경영자(CEO) 본인도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자수성가한 부호 중 한 명이다. 홍콩에서 14살 때부터 의류공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골드만삭스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는 등 드라마 같은 성공 스토리로 주목을 받았다. 1995년 남편과 함께 베이징에 소호차이나를 설립하고, 유명 외국인 건축가를 고용해 세련된 디자인의 건물을 선보이며 중국 부동산 시장을 선도했다. 그래서 ‘베이징을 설계한 여성’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 지진ㆍ태풍피해 속 빛난 부호들의 구호활동=재난으로 시름에 잠긴 국가에선 부호들이 구호활동에 나섰다. 네팔 유일의 억만장자 비놋 차드하리(Binod Chaudhary) 차드하리그룹 회장은 올해 네팔 대지진 참사 이후 보여준 선행으로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차드하리그룹 본사가 상당 부분 타격을 입었음에도 회사가 운영하는 학교 8곳을 대피소로 만들었고, 현재 피해자들을 위한 임시가옥 1만채 건설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금까지 구호기금으로 내놓은 돈만 30억원에 달한다.
필리핀의 복싱영웅 매니 파퀴아오(Manny Pacquiao)도 태풍 피해가 잦은 모국을 위해 최근 3년간 수십만 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훈훈함을 더했다. 그 밖에 해비타트의 집짓기에도 성금을 내놓는 등 링 밖에선 ‘기부영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자연보호 나선 동남아 재벌2,3세=환경자원이 풍부한 동남아권에서는 사람이 아닌 자연과 동물을 위한 ‘녹색기부’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싱가포르 국적의 루스 여(Ruth Yeoh)는 말레이시아에서 멸종위기에 놓인 산호초를 보호하고, 국경을 넘어 영국에 서식하는 희귀새들의 서식지 보호에 나섰다. 또 중국 윈난성 지방의 삼림파괴를 막기 위해 노력 중이다. 루스는 말레이시아 억만장자 여 티옹레이(Yeoh Tiong Lay)의 손녀로, 할아버지가 세운 YTL그룹에서 현재 전무를 맡고 있다. YTL은 말레이시아에서 호텔, 부동산 개발, 건설, 고속열차 사업 등을 총괄하는 대기업이다. 루스는 그룹 내에서도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자원을 아껴쓰고 재활용하는 것을 기업의 주요 경영전략으로 삼을 만큼 환경보호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소비재 거물 렉소(Rekso)그룹의 2세도 환경보호에 나섰다. 맥도널드를 비롯 식음료 사업을 하는 수코와티 소스로드조조(Sukowati Sosrodjojo)는 최근 3년간 24억원을 들여 자카르타의 국립공원 재정비 사업을 지원했다. 소스로드조조 일가는 한때 자산이 1조4000억원에 달했던 억만장자 집안이다. [관련기사] 아시아의 기부영웅① 한ㆍ중 재벌부터 스포츠별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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