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근로자 5300명 229억 못받아
[헤럴드경제(청주)=이권형 기자] 한때 직원 70여 명이 일했던 충북 음성의 한 플라스틱 제조 업체는 최근 경영 악화로 아예 문을 닫았다. 경영진은 지난 4월 법원의 회생 개시 결정으로 월급을 정상적으로 지급할 수 있다며 조금만 참아달라고 직원들을 설득해 왔다. 대다수 근로자가 퇴사했지만 20여 명은 경영진의 말을 믿었다.
월급을 받지 못한 채 일을 계속했다.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금융기관에 손을 벌리는 사람도 늘어갔다. 회사가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묵묵히 현장을 지켰다.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다. 경영진이 지난달 회사 운영을 접은 것이다. 장기 불황으로 도저히 회사를 운영할 형편이 안 된다는 말만 남겼다.
남은 직원들은 다니던 직장의 폐업 소식에 황당하기만 했다. 추석이 코앞이어서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받지 못한 월급은 그대로 체불 임금이 되고 말았다.
이 업체에서 영업관리직으로 일했던 이모(25ㆍ여) 씨는 22일 “스스로 눈을 낮춰 중소기업을 선택했다. 월급은 적었지만 무언가 배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는데 지금은 남은 게 없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어 “나는 젊어 새 직장을 바로 구할 수 있지만, 구직이 쉽지 않은 40∼50대 현장 근로자들은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기 어렵게 있다”며 “우리에게 추석은 남 얘기”라고 전했다.
넉넉하고 즐거워야 할 추석 명절이 오히려 더 서럽고 우울한 사람들이 있다.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해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근로자들이다.
고용노동부 청주지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 말 현재 충북도내 임금 체불 근로자는 5300여 명이다. 이들이 받지 못한 체불 임금은 모두 229억원에 달한다. 1인당 평균 430여 만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임금 체불 근로자는 500여 명, 액수는 55억원 늘었다.
청주지청은 추석을 앞둔 근로자의 생계 안정을 위해 오는 24일까지를 기한으로 임금과 퇴직금 등 체불 금품 청산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체불 임금 청산 지원 전담반’을 설치ㆍ운영해 임금 체불과 관련된 정보를 파악해 신속한 청산이 이루어지도록 집중 지도 중이다.
청주지청 관계자는 “근로자들이 즐거운 추석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추석 전 취약사업장을 집중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임금 체불로 힘겨워하는 근로자들이 많지만, 이들이 구제받을 뾰족한 방법은 없다는 데 있다. 고용부에 진정을 내면 체불사업주에게 지급 명령이 내려지지만 사업주가 이행하지 않으면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민사소송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것은 상식이다. 당장 한푼이 아쉬운 근로자들에겐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음성노동인권센터 관계자는 “일부 근로자의 경우 정부에서 지원되는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이마저도 한정돼 있다”며 “임금체불이 반복되는 만큼 근로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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