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슈퍼리치섹션 윤현종 기자] 3개월여 만에 개인자산 10조6200억원(91억달러가량)을 날린 부자가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왕징(王靖ㆍ43) 베이징 신웨이(信威)그룹 회장입니다. 현재 그의 손엔 달랑(?)11억달러만 남았습니다. 몇 년 간 벌어들인 큰 돈을 몇 달 새 잃었는데요. 자산 총액 대비 손실 비율은 90%에 가깝습니다. 올 상반기 자산 절반을 날린 리허쥔(李河君) 하너지그룹 회장을 능가합니다.
왕 회장의 최근 소식이 화제가 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수년 전 중미지역 니카라과에 ‘제2의 파나마운하’를 짓겠다고 공언해서인데요. 그와 관련해 세간에 알려진 건 사실상 이게 전부나 마찬가집니다. 그의 별명이 ‘신비의 보스’인 이유입니다. 서구 언론들도 왕 회장을 언급할 때마다 “미스테리 억만장자”란 수식어를 붙입니다.
대체 그는 누구일까요. 어떻게 십 수조 원을 번 것일까요. ‘뜬금없이(?)’운하사업에 손을 댄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대표적인‘은둔형 대륙부호’로 불리는 그의 베일을 벗겨봤습니다.
▶ 6년 전 시작된 ‘은둔의 역사’ = 왕 회장의 신상 파악을 위해 그가 지분을 가진 신웨이그룹 등 상장사 공시자료를 살펴봤습니다. 1972년 베이징서 태어난 그의 주소지는 지난해 7월 현재 베이징 서남부 펑타이 구(豊臺區)입니다.
하지만 베이징 토박이인 그의 과거는 구체적으로 드러난 게 없습니다. 다만 2013년과 작년 열린 기자회견에서 왕 회장은 “장시(江西)중의약대학에서 전통의학을 전공했다. 베이징 창핑(昌平)전통문화학교 교장을 맡았다. 스물 한 살 때였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건 6년 전인 2009년입니다. 이동통신기술 전문기업 베이징신웨이(北京信威ㆍ이하 신웨이)의 인수자로 나선 것이죠. 당시 그는 회사 지분 41%를 174억여원(9500만위안)에 매입, 최대주주가 됩니다.
신웨이는 발전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중국 국영회사 ‘다탕전신과기산업그룹(大唐電信科技産業集團)’ 자회사로 1995년 설립됐습니다. 이 회사는 2000년대 중반부터 모기업에서 독립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합니다. 2004년께부턴 경영사정까지 나빠졌습니다. 이후 5년여 간 직원 수는 2800명에서 400명으로 줄었습니다. 영업손실도 734억원(4억위안)에 달했습니다.
사실상 망해가던 신웨이를 사들여 회장이 된 왕징은 회사 체질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특히 몸집 불리기에 주력하는데요. 그는 회사를 상하이 증시에 ‘백도어리스팅(Back Door Listingㆍ우회상장)’합니다. 비상장기업(장외기업)이 증시에 이미 등록된 기업 하나를 골라 합병하는 방식으로 상장하는 것이죠. 장외기업 신웨이는 손해볼 게 없었습니다. 상장 심사나 공모주 청약 등 일련의 증시 등록 절차를 생략할 수 있어섭니다.
2013년 9월 왕 회장은 2003년부터 상하이 증시에 등록돼 있던 네트워크설비 생산업체 ‘중촹신처(中創信測)’를 합병합니다. 당시 이 회사 시가총액은 2200억원(12억위안)이었습니다. 신웨이 기업가치의 25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현지언론들은 “상하이 증시 최대규모의 우회상장”이라고 평했습니다. 회사명도 ‘신웨이그룹(信威集團)’으로 바뀝니다.
이후 왕징은 승승장구합니다. 회사 가치도 21개월 간 3.8배 가량 뛰었습니다(6월 말 기준). 상장 후 신웨이 지분 34.58%를 확보해 최대주주 자리를 지킨 왕징의 개인자산은 11조9000억원(102억달러)까지 불었습니다.
▶ 조세회피처에서 꽃핀 ‘운하왕’의 꿈 = 현재 왕 회장과 그의 측근과 기타 우호지분을 합한 웨이신 10대주주 지분율은 6월 말 기준 78%에 달합니다. 웨이신은 사실상 왕징의 개인회사인 셈이죠.
왕 회장은 자신의 ‘돈줄’역할을 하는 이 회사에 기대 다른 영역으로 사업을 넓힙니다. 특히 해외 조세회피처에 만든 개인회사 10여개가 이 일을 맡았는데요. 취재 결과 그 정점엔 역시 왕징 개인이 만든 투자관리법인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상하이 증권거래소 등이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그는2012년 9월 14일 베이징다양신허투자공사(北京大洋新河投資公司ㆍ이하 다양신허)를 만듭니다. 왕 회장은 이 회사 지분 100%를 갖고있습니다.
다양신허는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HKND)에 투자했는데요. 이 또한 왕징이 2012년 8월 세웠습니다. HKND는 세간의 화제가 된 ‘제2 파나마운하사업’을 이끄는 주체입니다. 니카라과를 관통해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연결(총연장 278km)하는 것으로 계획돼 있죠.
HKND 소재지는 홍콩입니다. 왕 회장은 지주사 격인 ‘HKND 그룹 홀딩스’를 케이먼군도에 세웠습니다. 기타 운하개발을 돕는 관련법인 4곳의 근거지도 케이먼군도입니다.
왕 회장이 운하를 구상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운하사업은) 신웨이가 해외 통신시장 진출을 위해 니카라과에 갔다가 잡은 일종의 ‘기회’였다”고 말합니다. 공교롭게도 신웨이가 니카라과 당국과 업무협약을 맺은 시기가 2012년 9월입니다. 왕 회장의 개인투자법인(다양신허)이 세워진 때와 일치합니다.
이 운하는 작년 7월 착공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현재 왕징은 총 500억달러가 투입될 이 사업에 개인 돈 5억달러를 투자한 상태입니다.
왕 회장은 니카라과 운하 말고도 다양한 해외건설 사업에 투자 중인데요. 2013년 12월엔 우크라이나 항만공사에 10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임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결국 왕징은 각종 세금까지 줄여가면서 해외 각지 대형 프로젝트에 돈을 쏟고 있는겁니다.
중요한 건 단기간에 10조원 이상을 번 왕 회장이 웨이신 인수 이전엔 통신사업 경력이 전무했을 뿐 아니라, 운하 개발 전엔 건설 사업 경험도 없었단 사실인데요.
중국 언론들조차 왕 회장을 “운하에 미친 사나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 씨 마르는 돈줄…왕징 “문제 없다” = 마치 승부사처럼 각종 사업을 벌여 온 왕 회장은 그러나 자꾸 말라가는 ‘돈줄’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습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현재 그는 세계 억만장자들 가운데 개인자산이 가장 많이 줄었습니다. 현재 왕 회장 손에 남은 11억달러는 6월 말(102억달러)의 10% 수준입니다. 사실상 파산 직전까지 내몰린 것이죠.
가장 큰 이유는 중국증시가 빠르게 내리막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돈줄인 신웨이 주가는 올 들어 57%까지 떨어졌습니다. 지난달 10일 이 회사 주식 51%에 대한 보호예수기간이 끝나며 주가는 더 빨리 내려갔죠.
7월엔 운하개발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24억달러 어치의 주식을 저당잡힌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그의 자산 폭락이 심상찮은 사태임을 알게 해 주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겉으론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없단 것이죠.
왕 회장은 “자금은 문제가 아니다. 미국 월가 등의 투자자들이 (운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옛날 수에즈와 파나마 운하도 돈을 빌려서 지은 것 아닌가”라고 말합니다. 현재 왕 회장은 HKND를 기업공개(IPO)하는 것 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진 것 만은 분명합니다.
빈털터리가 될 위기에 몰린 ‘은둔형 부자’는 다시 돈을 모아 일어설 수 있을까요. 세간의 관심이 그를 향하고 있습니다.
윤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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