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월요일 오후 6시반 서울 강남의 한 빌딩 사무실. “약속 있으면 먼저들 들어가”라는 팀장님의 말에 2년차 사원 문창윤(30ㆍ가명)씨는 눈치를 슥 본다.
사수인 김대리의 시선은 컴퓨터 모니터에 고정돼있다. 문씨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좀 늦어질듯. 너네 끼리 먹어라”
기러기아빠인 팀장은 “저녁이나 먹고 하자”며 반주까지 돌린다. 문씨의 업무는 10시가 넘어서도 끝날줄을 모른다.
한국의 습관적 야근 문화와 그 비효율성에 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개선 속도가 더디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수준의 근로시간과 낮은 노동생산성은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최근 OECD가 발표한 ‘1인당 평균 실제 연간 근로시간’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임금 근로자와 자영업자 등 전체 취업자(시간제 근로자 포함)의 1인 평균 근로시간은 2124시간으로 OECD 회원국 34개국 가운데 2위였다.
이는 2013년(2079시간)보다도 45시간이 더 늘어난 수치다. OECD 평균의 1.2배, 근로시간이 가장 적은 독일에 비해서는 1.6배 수준의 근로시간이다.
IT업계에 종사하는 직장인 김호연(35ㆍ가명)씨는 “윗사람 눈치 때문에 일을 다 해도 정시 퇴근 못할 걸 아니까 일과 시간부터 일을 쉬엄쉬엄 해 남겨놓는 경향이 있다”며 “기업 조직도 군대 문화가 남아 있어 윗사람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근면 성실함은 어떤 사회에서나 미덕이지만 눈치를 보며 야근하는 것이 근면 성실함의 척도는 아니다.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지난 2013년 OECD 34개 국가 가운데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25위에 그쳤다.
이를 두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해 OECD 통계를 인용해 “한국은 전 세계 최고의 ‘일 중독(워커홀릭)’ 국가지만 노동생산성은 OECD 전체 평균의 66%에 머문 것으로 나타나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꼬집었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일 중심적인 사회 분위기와 문화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인들은 근면 성실에 대한 집단적 강박이 있다. 삶을 즐기고 의미를 찾기보다는 성공을 위해 목표를 달성하려는 심리적 압박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낮은 노동생산성을 근로시간으로 채우려는 생각에 출근은 일찍 하고, 퇴근은 늦게 하게 된다”며 “우리 삶이 과도하게 회사 중심, 일 중심으로 돼있는데 이것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