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실(暗室) 만큼 칠흑일 순 없었다. 달빛과 도시의 화려함 탓이다. 아이가 걸음 재촉하는 것만 봐도 앞길 분간은 가능했다. ‘다다다다~’ 발걸음은 안방ㆍ옷방 다 뒤지고 커튼 뒤까지 수색했다.
식탁 뒤에서 웅크리고 그 소리를 지켜봤다. 빛이 문제였다. 나를 발견했다. 울음을 터뜨렸다. 순식간에 와락 안겼다. 얼굴이 뒤죽박죽 엉망인 채로. 나다. 그렇게 싫어하던 내 우는 얼굴이 거울처럼 다가왔다. 맞닿은 심장, 내 것의 5분의 1이 될까 싶은 그게 콩닥콩닥 뛴다. 책망하듯 어깨에 고개를 비볐다. 환히 밝힌 상태에서도 ‘아빠 도망가야지’라는 놀이를 줄곧 했던 날 자책했다. 아들이 날 닮은 우는 모습으로 살까 두려웠다.
유전자가 문제다. 마수(魔手)는 외형에 그치지 않는다. 성격ㆍ특질마저 지배한다. 화제의 중심에 선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떠오른다. 한국 정치권에 지친 다수가 꼭 닮았으면 하는 대상으로 꼽는다. 얼굴이야 세월 앞에 장사 없으니 넘어가겠다. 조각(組閣). 장관 숫자가 남녀 동수(同數)에, 각자의 경력도 워낙 다양해 흉내내기 힘들어 보인다.
시작부터 화려한 트뤼도 총리지만 그의 인기도 언젠간 고꾸라질 거다. 정치권은 물아일체인 데다 권불십년이어서다. 물론 이건 한국적 시각과 경험칙에 따른 섣부른 일반화다. 다만, 바뀌라고 있는 게 여야이고 트뤼도 총리의 공약에도 상대편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적자재정)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트뤼도 총리는 ‘넘사벽(넘기 힘든 4차원의 벽)’이다. 부친이 캐나다 역사교과서에 실려 있다.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 우리 달력으로 역산하자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캐나다 총리를 두 차례 지낸 인물이다. 그 나라 역사교과서엔 그가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자유주의 체제를 확립했으며, 냉전 시기엔 미국의 반대에도 쿠바와 관계 정상화를 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서술된 걸로 알려진다. 미국의 곁불을 쬐며 메이플 시럽 따위를 팔고 사는 그런 캐나다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무섭고 부러운 건 트뤼도가(家)의 유전자다.
이 유전자를 우린 어떻게 다룰 건가. 바이오시밀러, 쉽게 말해 ‘복제’는 가능한가. 우리가 뒤쳐진 건 산업화ㆍ사물인터넷 뿐만이 아니다. 누군가가 유행어로 등극시킨 이른바 ‘혼(魂)’이 한참 멀었다. 정답만을 찾아 청년을 헤매게 한 세월이 논란거리인 건국시점과 다르지 않다. 국회의원 되고 장관 간판 달더니 이게 스펙이 돼 또 금배지를 달겠다는 인물이 여럿 대기 중이다. 다름이 경쟁력임을 깨우치고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한 ‘혼’이 잉태한 설화(舌禍)는, 절필하지 않을 역사가들이 설화(說話)로 기록할지 모른다.
뭣도 모른 채 ‘도망놀이’에 상처받은 아이와 산책하며 낙엽을 얘기했다. “낙~엽~”, “그치 노랗고, 빨갛지? 힘들어서 쉬는 거야. 낙~엽~.” 아이는 대꾸가 없다. 그에게 그 단어는 아직 너무 어렵기에. 삶의 정답을 모르는 나만 묻고 답했다. 찬바람이 불었다. 감기에 걸릴까봐 아이의 모자를 한 번 더 눌러줬다. 나와 달리 곱슬머리인 아이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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