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려 우유구경도 힘들던 60년대 서독 광부 위로·격려차 찾은 탄광서 박정희 전 대통령, 눈물의 지원요청 젖소 200마리로 한독목장 탄생
국내 낙농업 효시·축산발전 메카로 2012년 놀이목장·테마파크 변신 젖짜기 체험 등 하루 1만명 발길도 지난 1961년 5ㆍ16 군사정변 직후 미국은 집권 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제공하던 원조를 중단했다. 가난한 한국에 돈을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같은 처지에 있는 독일연방공화국(서독)에 1억4000만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파견됐던 간호사와 광부들의 봉급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몇 년 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서독의 칼 하인리히 뤼브케 대통령 초대로 독일을 방문했다. 서독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ㆍ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가난한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나 이역만리 타국 땅 수천m 지하에서 고생하는 광부들과 이방인의 굳어버린 시신을 닦으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어린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국민이 생각나 박 전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건네며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서독 국민이 도와주겠습니다”라고 했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우유를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열망이었던 박 전 대통령은 낙농 발전에 선도 역할을 할 시범 목장 건립을 지원 요청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한독낙농시범목장’이었다.
경기 안성시 공도읍에 위치한 안성팜랜드의 역사관에는 이 같은 내용의 영상물이 있어 방문객들의 감동을 자아낸다. 안성팜랜드의 옛 이름은 한독낙농시범목장이다. ‘한독’은 한국과 독일을 뜻하는 것으로, 1969년 박 전 대통령이 독일에서 차관을 들여와 목장을 만든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이곳은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방문을 계기로 새삼 세월의 인연을 느끼게 해주는 명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국내 낙농업의 효시, 한독목장=축산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고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였던 1960년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선진국처럼 충분한 우유를 먹이고 싶었던 박 전 대통령은 1964년 서독 방문 당시 한국 낙농 발전을 선도할 시범 목장 건립을 요청했다. 한국으로부터 간호사와 광원 인력을 조달받은 서독 측은 이를 받아들여 정부가 마련한 부지에 건물과 트랙터 등 기계장비, 젖소 200여마리를 지원했다.
1969년, 이렇게 탄생한 한독목장은 축산 농가에 집중적으로 낙농 교육을 하는 등 국내 낙농업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1980년대에는 낙농뿐 아니라 한우, 돼지, 닭 등 축종별 시범 목장으로 변신해 농가에 축산기술을 전수했다. 1990~2000년대에는 한우와 유기농 축산 등 고부가가치 축산 기술을 가르쳤다. 넓은 초지에서 나오는 풀로 유기 배합 사료를 만들어 자체 공급하기도 했다.
한독목장에서 23년간 근무하다 2012년 퇴직한 성낙일(60) 씨는 “1980~90년대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와서 낙농 교육을 받아 무수히 많은 낙농가가 배출됐다”며 “이곳에서 국내 처음으로 낙농이 시작돼 경기도 등 다른 지역으로 퍼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독목장이 국내 낙농업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을 시민 대부분은 잘 알지 못한다. 지난 23일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안성팜랜드를 방문한 김항영(66ㆍ경북 구미시) 씨는 “6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우리 세대는 우유를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분말 우유를 끓여주면 한 컵씩 먹는 게 전부였다”며 “오늘 안성팜랜드에 와서야 박 전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한독목장을 세웠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박 전 대통령이 정말 훌륭한 일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성팜랜드 관계자는 “70대 어르신들의 경우, 한독목장 역사와 박 전 대통령의 활동상이 담긴 동영상을 보고는 대부분 눈물을 비치곤 한다”며 “아마 못살았던 옛날과 경제 발전 성과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고 했다.
▶국내 최대 체험형 놀이목장, 안성팜랜드=지난 40여년간 한국 축산업을 선도해온 한독목장은 이후 변화를 거듭해 2012년 4월 21일 ‘안성팜랜드’로 이름을 바꾸고 축산 테마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드넓은 초지와 한가로이 서 있는 미루나무, 독일식 건물 등이 이국적인 풍치를 자아내 KBS ‘공주의 남자’를 비롯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전체 129만㎡(39만평) 규모의 대지에는 농축산 체험 공간, 실내 농축산 전용 행사장, 농축산물 판매상점, 승마장 등이 들어서 있다. 방문객들은 방목돼 길러지는 소와 말, 염소, 토끼 등에게 직접 먹이를 주고 만져보며 체험할 수 있다.
안성팜랜드 다른 관계자는 “젖 짜기 체험을 하거나 마차를 타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등 팜랜드에는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있다”며 “지난해 하루 최대 방문객은 1만여명에 달하는 등 체험형 놀이목장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좋다. 최근 봄을 맞아 방문객이 점점 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오늘날은 우유가 넘쳐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좋은 공부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명감을 갖고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난한 시절엔 꿈도 못 꿨던 우유를 아이들에게 마음껏 먹이고 싶다던 박 전 대통령의 소망과 꿈을 안성팜랜드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안성=민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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