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올 한 해는 ‘유행어 천국’이었다.
과거엔 ‘개그콘서트’를 필두로 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수많은 유행어가 나왔으나, 2015년엔 다르다. 방송코미디가 예전만큼 인기를 모으지 못한 데다, 입에 감기는 유행어도 특별히 등장하지 않았다. ‘니글니글’(개콘)이나 ‘테니스’(웃찾사)처럼 따라하기 쉬운 말들이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했으나 올 한 해를 강타한 ‘말’들에 비해 파괴력이 약했다.
유행어에도 법칙이 있다. 지상파 방송사 예능국 관계자는 “일부러 만들려고 하면 억지스럽고, 늘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유행어가 된다”고 말했다. 특히 인터넷에 오르내리는 유행어에는 공통점이 있다. 단순히 “따라하고 싶은 말”이 아닌, “패러디 등의 참여가 가능한”, “특정 문장에 자신의 처지나 상황을 담아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말이었다.
2015년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고, 숱한 패러디로 이어졌던 유행어를 만든 사람들역시 의외의 인물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방송인, 영화 속 대사, 논란의 주인공, 혹은 노래 가사를 통해 만들어졌다.
▶ 논란이 만들었다…“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 “어차피 우승은 ○○○”=올 상반기 방송가를 발칵 뒤집어놓은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막말, 욕설로 시작해 반말 논란으로 번진 파문이다.
지난 2월 MBC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녹화현장에서 이태임이 예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방송가는 꽤나 시끄러웠다. 이 일로 이태임은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대중의 뭇매를 맞았다. 논란이 잠잠해질 즈음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는 난데없이 당시 촬영현장을 담은 영상이 공개돼 또 한 번 파문이 일었다.
주연배우는 예원이었다. 이 영상에서 이태임은 예원에게 “너 어디서 반말이니?”라며 예민한 모습을 보였고, 예원은 이에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라고 응수했다. 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퍼지며 수많은 패러디가 양산됐다. 영상을 계기로 여론은 이태임에게 향했던 비난의 화살을 예원에게로 옮겼다. 이태임은 이후 지난 11월 드라마H ‘유일랍미’로 복귀했다.
지난 6월 시작한 국내 최초 래퍼 서버이벌 ‘쇼미더머니’(Mnet)에서도 희대의 유행어가 나왔다. 힙합씬의 문제아 블랙넛이 2차 오디션 당시 랩에서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고 했던 가사다.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위너의 멤버를 겨냥한 가사였다. 전 시즌에선 같은 소속사의 연습생 바비가 최종 우승을 차지했으며, 프로그램엔 YG 소속 지누션과 타블로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 한 줄의 가사에는 날 선 비아냥이 담겼다. 송민호라는 래퍼를 실력과는 무관하게 소위 ‘소속사발’로 재단한 것은 물론 프로그램의 공정성까지 도마에 올린 가사였다. 그러나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가 아니었다.
▶ 예능이 만들었다…“힘을 내요~슈퍼 파월~”, “그럴싸하쥬?”=김영철은 올 한 해 모처럼 빛을 봤다. ‘옛날 사람’이라 콩트를 사랑하는 그는 지난 2월 MBC ‘무한도전’ 신년 특집 ‘무도 큰잔치’에 출연해 시청자를 단박에 사로잡았다. 김영철은 사실 ‘무한도전’의 단골손님이었으나, 이토록 화제가 된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당시 방송에서 김영철은 베개 싸움에 임하는 현주엽을 응원하기 위해 막스 라베(max raabe)의 창법을 흉내낸 “힘을 내요~ 슈퍼 파월”이라고 노래했다. 두고 두고 회자된 이 유행어는 최근 김영철이 교통사고로 병원신세를 졌을 당시 오르내리게 됐다. 아픈 김영철을 응원하는 한 마디였다.
‘쿡방’의 중심에 선 백종원의 말투도 유행이었다. 특히 ‘마이 리틀 텔레비전’(mbc)에서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나온 말들이다. 뚝딱뚝딱 요리를 내놓은 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그럴싸하쥬?’라고 하면 정말로 그럴싸해 보인다. 백종원은 프로그램에서 늘 ‘고급진 레시피’를 강조했다. 올 한 해 방송가에서 누구보다 맹활약한 백종원의 인기 뒤엔 그의 친근한 화법이 있었다.
▶1000만 영화가 만들었다…“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어이가 없네?”=지난 8월 개봉한 1000만 영화가 만든 유행어도 있다.
광역수사대 경찰 서도철(황정민)의 대사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자존심이라는 뜻의 속어)가 없냐”는 말이다. 이 대사는 최근 종영한 KBS2 ‘톱밴드3’의 예선에 참가한 록밴드가 자신들의 팀을 한 마디로 설명하라는 심사위원 신대철에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그게 ‘록’ 정신이라고 한다.
재벌3세 조태오의 명대사 ‘어이가 없네’도 히트상품이었다. 영화에서 조태오는 운수노동자 배기사(정웅인)에게 “맷돌 손잡이가 뭔지 알아요? ‘어이’라고 해요. 맷돌을 돌리다가 손잡이가 이렇게 빠지면 일을 못하죠. 그래서 어이가 없다고 하는 건데…, 어이가 없네”라고 말했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재벌3세의 대사 한 줄 역시 인터넷을 강타했다.
▶ 네티즌이 만들었다…“~전해라”=2015년을 며칠 앞둔 12월 현재까지 가장 사랑받고 있는 유행어는 노래에서 나왔다. 가수 이애란의 ‘백세인생’에 나오는 가사다. ‘못 간다고 전해라’에서 따온 이 말은 ‘멘붕이라 전해라’, ‘월요일 또 왔다고 전해라’ 등 누구나의 심경을 담아 무한변주를 거듭했다.
노랫말의 유행은 순수하게 대중이 만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먼저 퍼졌고, 급기야 모바일 메신저 이모티콘으로 등장해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 2013년 4월 ‘명품 가요쇼’에 출연한 이애란이 노래부르는 장면 아래로 패러디한 문구가 삽입돼 급속도로 인기를 모았다. 가사의 유행으로 이애란은 지난 5일 MBC ‘무한도전’에도 출연했고, 15일에는 SBS ‘스타킹’에 출연했다. 인기 급상승에 출연료가 달라졌다. “행사비가 6배나 뛰었다고 전해라~”.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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