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가 이어져도 12월 마지막주 만큼은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은 한 해를 돌아보는 때, 세모(歲暮)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안타깝게도 한 해를 회고해 보면 부끄러운 일이 먼저 떠오른다. 이런 마음은 조선 정조때의 문신 석당 김상정의 진단대로라면 지극히 정상이다. 부끄러움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는 부끄러움을 6등급으로 나누었다. 1등급은 부끄러운 행실이 하나도 없는 것(無恥:무치)이고, 2등급은 그런 행실이 적은 것(寡恥:과치)이며. 3등급은 장차 이를 없애는 것(祛恥:거치)이다.
4등급은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아는 것(知恥:지치)이고, 5등급은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有恥:유치)이며, 6등급은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조차 없는 것(無恥:무치)이라고 했다.
1등급과 6등급을 같은 용어로 규정한 것이 이채롭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석당은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조차 없으면 하지 못하는 짓이 없다. 하지 못하는 짓이 없으면 사람답지 못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1등급은 신(神)이다.
그는 ‘유치, 지치, 거치, 과치의 단계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며, 누구나 애를 쓰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 행할 수 있다’고 충고하면서 한 해를 반성할 때 부끄러운 일부터 떠올리는 필부필부를 토닥인다. 맹자도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고 한 바 있다.
우리의 세모(歲暮)는 늘 추운 겨울이다. ‘날이 추워진 뒤라야 소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공자의 말씀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세모를 맞는 우리네 머리와 가슴을 새삼 두드린다.
정치학 개론에 수치심을 깨우치는 단원도 끼워 넣었으면 좋겠다.
함영훈 선임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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