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텍사스 주 댈러스 인근에 ‘식스플래그’라는 놀이동산에 간 적이 있다. 이곳은 주말은 물론이고 주중에도 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다음 코스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명치부분이 심하게 아파왔다. 누군가에게 맞았기 때문이었다. 지나치던 한 청년이 주먹으로 필자를 때린 것이다. 그는 이어 아무렇지도 않은 채 “Oklahoma sucks!”라고 소리쳤다. 아프기도 했거니와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필자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해프닝의 원인은 필자가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오클라호마대학 로고가 새겨진 셔츠를 입은 것이 ‘죄’였다. 아뿔싸! 오클라호마와 텍사스는 서로 라이벌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매년 오클라호마대와 텍사스대의 풋볼 경기가 열리는 날은 그야말로 ‘전쟁’ 같은 분위기다. 다른 팀은 몰라도 서로에게만은 절대 져서는 안 된다. 마치 한일전을 방불케 한다. ‘적지’에서 그런 옷을 입고 다녔으니 집단폭행 당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한국이 일본과 경기할 때면, 한국은 종목과 관계없이 무조건 일본을 이겨야 한다. 특히, 축구는 ‘필수’이다. 최근에는 야구에서의 한일전이 축구에 버금가는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상대에게 패하기라도 하면 ‘역적’이 된다. 경기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는 응원전도 뜨겁게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선수들도 이를 악물고 서로를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다소 다른 차원이기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 역시 라이벌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옥스포드대학과 캠브리지대가 매년 격돌하는 조정경기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이 경기를 보기 위해 수십 만 명의 관중이 템즈 강 주위를 에워싼다. 180여 년간 두 대학이 경쟁을 펼쳐서인지 서로에 대한 라이벌 의식은 그야말로 한일전에 못지 않다.이 밖에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역시 서로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 지역성과 팬들의 성향에 근간을 두고 있는 대표적인 라이벌 관계이다. 일본의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안츠와 한신 타이거스의 라이벌 의식 역시 타 팀과의 그것과는 다르다. 국내에도 라이벌 관계에 있는 프로팀들이 있긴 하다. 프로축구의 서울과 수원이 그것이다. ‘슈퍼매치’라는 이름으로 펼쳐지는 두 팀간의 경기는 매번 수많은 관중이 자기 지역 소속 팀을 응원한다. 프로야구의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도 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서울을 같은 연고지로 쓰고 있는 두 팀의 경기가 열리는 잠실 야구장에는 항상 많은 관중이 운집한다. 그러나 축구는 서울과 수원을 제외한 다른 팀들에게는 이렇다 할 라이벌 팀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 옛날, 경평전과 같은 뜨거운 열기는 찾아볼 수 없다. 프로야구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삼성 라이온즈의 라이벌 팀은 누구인가? 프로농구는 이제 라이벌 팀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과거 농구대잔치가 열렸던 시절에는 연세대와 고려대의 라이벌전과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라이벌전이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지금은 어떤가? 프로배구의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아직도 라이벌전을 펼치고는 있지만, 그 열기는 예전만 못하다. 서로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없는 경기는 사실 재미가 없다. 10대 소녀팬들의 아이돌에 대한 지나친 라이벌 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수 개인은 물론이고 홈팬들을 적당하게 긴장시킬 수 있는 경쟁구도는 갖는 게 낫다. 최근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의 내년 시즌 홈팬 동원 수를 늘려보겠다는 계획을 내보였다. NC뿐 아니라 타 팀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름 좋은 방안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에 라이벌 관계까지 갖추어보는 것은 방안은 어떨까. NC의 경우 지역적으로 가까운 롯데 자이언츠가 적당해 보인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이에 대한 키는 미디어가 쥐고 있다. 미국의 경우, 라이벌 관계를 만들기 위해 지역 미디어들이 총동원된다. 가끔씩은 서로를 자극하는 감정적인 기사를 내보내기도 한다. 지나치지만 않다면 용인될 수 있다. 감독과 선수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팬들은 그들의 말 한마디와 행동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이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지혜롭게 이용할 필요가 있다. 팬들은 그런 라이벌 관계에 있는 팀들의 경기에 더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seanluba@hanmail.net*필자는 미주 한국일보와 <스포츠투데이>에서 기자, 체육부장 및 연예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스포테인먼트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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