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드나니 우리가 늙어 죽기 전까지 배워야 할 진실은 오직 이것뿐, 나는 입에 잔을 들며 그대를 바라보며 한숨 짓는다”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1869~1939)의 시 <술 노래> 이다.
내년 1월이면 필자는 50여년이 넘는 공직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본지의 칼럼도 이 글이 마지막이 되는 것이다. 5.16혁명 즉시 국가재건최고회의 1차 공무원으로 입사하여 1963년 문화공보부로 발령 받았는데 당시 한국은 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은 필자에게 ‘제1호 예술경영인’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지만 당시 상황을 되짚어 보면, ‘예술’과 ‘경영’이라는 말이 함께 붙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였다. 해외여행마저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필자는 많은 예술가들을 이끌고 세계 투어 공연을 다니며 견문을 넓혔고, 어려운 환경에 있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며 스스로 문화예술지원정책에 대한 초석을 다져 나간 게 아닌가 싶다.
현재 국내를 대표하는 예술가가 된 이들의 ‘떡잎’부터 알아볼 수 있었던 희미하지만 정확했던 과거의 직감은 지금 생각해 봐도 감사해야 할 일이 되었다. 그 시절 알 수 없는 확신이 내게 없었더라면, 그들의 앞날에 중요한 업적이 될 일들을 감히 진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공부를 퇴직하고 극장의 단체장으로 일을 하며 세계 유수의 공연을 유치하고 다양한 지역문화사업을 정착시킨 것도 극장 경영의 큰 본보기가 되었는데, 이 모든 결과는 다름 아닌 “열정과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을 예술과 함께 해왔기에 많은 이들이 나를 예술에 정통한 이로 알겠지만, 사실 몸소 예술인이 아니었던 내가 얼마나 전문적으로 그들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겠는가? 다만 예술가들이 풀어내는 언어의 강렬함이 나의 열정과 사랑에 함께 보태어져, 이룰 수 없는 일들을 이루어 낸 것은 아닐까.
서두에 풀어 낸 ‘예이츠’의 시는 필자의 과거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눈으로 든 예술”은 사랑이었고, “입으로 든 술”과 함께 다음의 순간을 약속한 것도 예술이었다. 이것을 통해 50년이라는 긴 시간은 세월을 셈할 수 없을 만큼 ‘찰나의 순간’으로 흘러간 것이다.
반세기가 넘게 한 분야에 종사하며 뜨거운 가슴으로 ‘모든 예술’은 필자의 가슴으로 끌어들인 이유를 예술에서 감동받고 희망을 얻는 이들의 기쁨이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55년 공직생활의 종지부를 찍으며, 과연 공직자로서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가를 자문해보면 더 많은 일을 추진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시작되는 시간들은 휴식과 정리가 아닌, 견고해진 열정이 미래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작업을 해 나가는 시간으로 될 것이다.
사무실 한켠에 쌓인 지난 시간들을 빼곡히 채워 넣은 상자위로 석양이 내려앉은 모습에 더없이 마음이 편안해 지고, 내 쉬는 한숨에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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