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보육원 떨어졌다, 죽어라 일본”, “장애아를 낳으면 인생은 끝, 죽어라 일본”.

최근 일본 워킹맘들이 거리에 나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워킹맘들은 일과 육아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을 호소했다.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가 ‘일억 총 활약 사회’를 통해 여성 근로환경 개선을 외쳤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보인다.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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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킹맘은 짐짝?…‘여자는 집안일, 남자는 회사일’ 역할 구분하는 사회, 일본

여성에게 유독 가중되는 ‘육아의 의무’에 대해 일본에선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저성장 시대에 가난은 가계의 책임이고, 육아는 ‘엄마’의 책임이다. 회사에서는 육아휴직과 산후조리를 ‘민폐’로 보고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한다. ‘마타하라’는 기업이 임신하거나 육아에 힘쓰는 워킹맘에게 가하는 미묘한 폭력 또는 차별을 의미하는 단어다.

후생노동성이 지난해 워킹맘 3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임신ㆍ출산으로 인해 직장에서 마타하라를 경험한 워킹맘은 정규직의 경우 21%, 계약직의 경우 50%에 달했다. 이들은 “회사에 임신했다고 하니까 ‘이래서 여성은 뽑으면 안된다’고 희롱하거나 강등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경영개선을 가장한 마타하라도 속출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ㆍ닛케이) 신문은 마타하라가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자 임신한 여직원들에 ‘능력 부족’을 이유로 해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킹맘들은 “인사고과에서 한 번도 지적받아 본 적 없는 ‘능력 부족’을 이유로 해고 당했다. 회사에 임신사실을 알린 지 일주일 만의 일이다”고 호소했다.

남편이 대신 육아를 봐줬으면 좋겠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육아에 적극적인 ‘이쿠맨’(육아를 뜻하는 일본어 ‘이쿠’와 남성을 뜻하는 영어 ‘맨’의 합성어)이 증가할 조짐을 보이자 ‘파타하라’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파타하라는 이쿠맨에 가해지는 직장내 폭력 또는 차별을 의미한다. 닛케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남성의 12%는 육아를 위해 근로시간을 줄였다가 각종 차별을 당했다. 언어폭력은 물론 전근 또는 해고 조치도 있었다.

마타하라와 파타하라를 막기 위한 각종 제도가 논의되고 있지만, 성인 부부의 활동 영역을 성별에 따라 집과 일자리로 구분하는 사회인식을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 경제전문지 동양경제(東洋經濟)신문은 ‘직장의 짐짝인가? 전력인가? 워킹 마더(職場のお荷物か?戰力か?ワーキングマサー)’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잡지 커버로 다뤘다. 같은 달 경쟁지인 ‘닛케이 비즈니스’도 모바일 게임 대표이사인 여성 임원을 취재해 “여성 관리직 쿼터제나 관련 제도는 열심히 일하는 여성에 대한 실례”라는 주장을 펼쳤다. 마타하라와 파타하라에 대한 문제는 기업의 문제가 아닌 ‘요령’이 부족한 직장인들의 핑계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 ‘여성 활약 사회’ 내세운 아베…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사회적 무관심

2015년 기준 25~54세 일본 여성의 취업률은 71.8%를 기록했다. 재취업률은 54%에 달했다. 얼핏 보면 높은 수치지만 여기에는 숫자의 함정이 있다. 취업한 여성 중 정규직에 해당하는 이들은 8%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전체 직원 대비 여성 임원 비율도 0.6%에 그친다.

일본 워킹맘들이 정규직을 갖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육아 문제’가 있다. 지난해 4월 기준 일본의 보육원 입소 대기아동은 2만3000여 명을 기록했다. 2011년 이후 보육원 입소 대기아동의 수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일본 맞벌이부부가 전체 가구의 5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감소폭이 큰 것도 아니다.

0~6세 인구 1만 명당 보육사 수는 전국 평균 440명이다. 일본 보육시설은 법적으로 보육사 1 명당 아동 3명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지역별로 나누었을 때 시마네(島根)현은 1만 명당 보육사 848명으로 많지만, 도쿄의 경우 평균을 겨우 넘은 463명이다.

최근 일본 열도를 뒤흔든 30대 워킹맘의 “죽어라 일본” 블로그 글은 여성의 근무를 억압하는 사회인식과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난달 29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해당 워킹맘의 글을 들은 아베는 “익명의 글이기 때문에 사실인지 확인해봐야 한다”며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자민당 의원 중 한 사람은 회의 중 “그딴 글을 올린 사람이 누구냐”고 외치기도 했다. 같은 불만을 공유하고 있던 워킹맘들은 지난 5일 도쿄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내가 보육원 탈락한 워킹맘이다”고 시위를 벌였다. 블로그 글을 지지하는 서명자만 3만 명에 달했다.

9일 보육원 문제에 이어 장애아 양육문제가 새로운 화제로 부상했다. “장애아 낳으면 인생 끝, 죽어라 일본”이라는 글을 익명으로 올린 20대 워킹맘은 중증질환이나 장애가 있는 신생아를 양육하기 위한 보육시설 부족으로 직장을 그만둘 위기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여성잡지 ‘마마스타’에 따르면 20~49세 일본 직장인 여성의 95%는 장애아를 낳았다는 이유로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중증질환이나장애아동의 경우, 첨단장비가 구비된 NICU(신생아의료시설)에 장기입원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NICU 1000개소 당 수용가능한 장기입원 신생아는 91명에 그친다.

정부에서도 산후조리와 소아과 의사, 그리고 장비 등을 지원하지만 턱없이 부족해 부담은 고스란히 개인에게 돌아가고 있다.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주요 진료과목 소아과 의사 수는 0~14세 인구 1만 명당 10.2명에 그친다. 산부인과 의사와 산후조리사도 15~49세 여성 인구 1만 명당 4.1명이 존재한다.

올해 초 미야자키 신스케(宮崎謙介) 자민당 중의원 의원은 “사회에 내재된 성차별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남성 육아휴가를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1월 말 휴가를 떠난 미야자키 일본 주간지 ‘슈칸 분춘’(週刊文春)의 취재 결과, 그는 육아가 아닌 불륜을 위해 휴가계를 낸 것으로 밝혀졌다. 미야자키는 기자회견을 통해 의원직에서 사퇴했지만, 당시 일부의 남성 여론은 “의원의 본분을 저버리고 휴가를 떠났으니 자업자득”, “그러길래 남성이 무슨 육아휴가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여성잡지 ‘닛케이 우먼’은 “미야자키 전 의원에 분노하는 까닭은 그가 남성 육아휴가제도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이라며 “일본은 지금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일과 육아를 나누는 양성평등 사회가 이뤄지기 위해 거쳐야 할 과도기에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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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ja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