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사세요~”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으셨던 우리 할머니께 늘 드렸던 덕담이다. 할머니는 93세에 돌아가셨다. 돌이켜보니 90세를 넘기셨을 때도 누구에게나 오래 사시라는 말을 들으셨던 것 같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장수는 온전한 축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축복은 커녕 ‘장수 재앙‘, ’장수 리스크‘라는 험한 말까지 붙는 세상이 됐다.

일본 NHK 스페셜 제작팀이 펴낸 ‘노후파산-장수의 악몽’이라는 책이 최근 우리나라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노후파산은 수명이 길어진 노인들이 불안정한 소득과 병치레 등으로 경제적 곤궁에 시달리다가 파산하는 현상을 말한다. 고령화 대국 일본에선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더 두려운 것은 일본은 공적ㆍ사적연금 등 고령화에 적극적으로 대비해 온 나라라는 점이다. 일본인의 노후 수입원 중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68%에 달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13%에 불과하다. 2050년이면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 2위에 오른다고 한다. 열심히 준비한 일본이 저런 처지인데 우리는 어떻게 될 지 두렵다.

사회 초년병 때 연금으로 100만원을 불입하는 친구가 있었다. 당시 그 친구 급여의 60%가 넘었다.

”도대체 몇 살까지 살려고 그렇게 많은 돈을 넣느냐“며 다들 비웃었다. ”늙어서 꼭 친하게 지내자“는 말도 했다. 진짜가 아니고 농담으로 말이다.

한데 지금은 그 친구가 부럽다. 나도 조금이라도 일찍 연금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후회가 ’쓰나미급‘으로 밀려온다.

요즘 금융권에서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핫이슈다. ISA 판매가 시작된 후 몇일동안은 ’몇 명이 얼마를 가입했다‘는 실적이 하루 단위로 발표됐고 지금도 실적 발표는 계속되고 있다.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ISA는 국민 재산 불리기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훌륭한 취지다. 하지만 크게 와닿지가 않는다. 주변에는 심지어 ”금융사 수수료 불려주기 아니냐“는 까칠한 눈도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걱정은 자식 교육비, 전세값 상승, 그리고 이제는 장수리스크까지 더해졌다. 그래서 통장에서 발생한 수익 중 최대 250만원의 비과세 혜택을 주는 ISA에 큰 감흥이 안 생긴다.

이보다 조금 더 가려운 곳을 긁어 줬으면 좋겠다. 노후에 대비해 연금에 대한 세제 헤택 같은 것 말이다.

장수는 개인의 리스크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 국가의 리스크다. 예상보다 수명이 길어지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고 각종 사회문제가 발생한다.

보험사의 경우 이미 장수 리스크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평균 수명 80세를 예상하고 보험료를 책정했던 종신보험은 오래 사는 사람이 늘면서 부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도 정부도 기업도 장수가 악몽이 되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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