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유해성판단 불구 정부는 고작 과징금 檢은 수사중단 제조사에 시간만 벌어준 꼴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이 19일 오전부터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등 주요 제조사 직원들에 대한 본격적인 소환 조사에 돌입했다.

검찰의 고강도 수사를 앞두고 전날 롯데마트는 대국민 사과와 보상계획안을 발표하는 등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가 17년 동안 시중에 판매됐고, 지난 2011년 유해성이 밝혀진 이후로도 5년이 지났다는 점에서 정부와 제조업체의 뿌리 깊은 관리 부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날 특별수사팀은 옥시 측 실무진 2명을 참고인으로 출석시켜 법인 고의청산, 연구보고서 조작, 유해성 은폐 시도 등 의혹에 대한 집중 추궁에 들어갔다.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망자를 가장 많이 낸 업체로 알려져 있다. 옥시를 시작으로 다른 제조업체 관계자에 대해서도 줄소환이 시작될 예정이다.

현재 검찰의 수사망에 들어가 있는 업체는 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 버터플라이이펙트 등 4곳이다. 실무자 조사가 끝나면 당시 회사의 최고경영진에 대한 소환도 본격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타이밍을 정부와 검찰이 스스로 놓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은 당시 임신부와 영ㆍ유아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으로 잇따라 숨지면서 공론화됐다. 보건당국은 2011년 역학조사를 벌여 가습기 살균제가 피해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결과를 내놓았고, 피해자들은 이듬해 가습기 살균제 제조ㆍ판매ㆍ유통업체 19곳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보건당국의 역학조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 수사가 중단되는 등 업체들에게 시간만 벌어준 꼴이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정부 조치는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안전하다”는 ‘과장광고’를 한 데 대한 과징금 수천만원에 불과했다.

이처럼 허송세월이 흐르는 동안 피해자 가족들은 정신적 고통과 함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제조사들의 ‘증거인멸’ 정황도 속속 밝혀졌다. 옥시의 경우 자사 홈페이지에 피해자들이 올린 글을 삭제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고의로 법인을 청산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의 공동대표 강찬호 씨는 “과거 영국 옥시 본사까지 찾아갔지만 문전박대 받기 일쑤였다”며 “피해자들과 환경단체가 지난 겨울 전국을 다녔지만 그 과정에서 가해 기업 중 피해자들을 만나러 온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편, 뒤늦은 ‘반전’이 일어날 지 여부도 주목된다. 제조사들이 살균제 속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성분이 인체에 해롭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살인죄’까지 적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반면 업체들이 사전에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면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적용될 수 있다. 현재로서는 검찰이 살인죄 관련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법정의라는 것이 돈이 많거나 적거나 관계없이 잘못을 따지고 적용해야 한다”며 “기업이라는 집단에 대해 법이 관대해 지금에야 사과하는 모습을 보인 것같아 씁쓸하다”고 지적했다.

양대근ㆍ김현일ㆍ고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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