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는 경제학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기업의 주주와 경영자 역시 이런 관계다. 하지만 대리인은 번번이 주주의 이익에 반해 사익을 추구하는 배반을 일삼기 일쑤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주는 이사회, 회계감사 등을 통해 감시(monitoring)을 강화한다. 정보공개를 통해 경영 과정을 최대한 투명화 하는 것이다.
20대 국회의 탄생을 앞두고 있다. 3당 체제의 새로운 정치구조 속에서 복지 확대, 대기업 규제, 증세 등이 주요 쟁점으로 급부상할 거라는 언론보도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이 쟁점들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이미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논쟁들이 벌어져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논쟁 과정에서 주인인 ‘국민’은 사라지고, 대리인들만 모여 왈가왈부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자꾸 잊어버린다는 점이다.
몇 년 전부터 ‘무상’시리즈 복지 정책이 유행하고 있다. 무상보육은 불과 3년 만에 예산이 2배로 급증했고 무상급식은 시행 4년 만에 예산이 5배 이상 늘었다. 값비싼 무상복지는 고스란히 국가의 재정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나라 곳간이 비워만 가니, 일부 정치권에서는 증세카드를 만지작거린다. 그러나 정작 세금을 내는 국민과 기업은 논쟁 테이블에 앉지도 못했다.
연금인상도 마찬가지다. 수혜자인 기성세대는 나중에 연금이 고갈될지는 나몰라라하면서 어떻게든 수령액만 더 높이려 애쓴다. 지난 20년간 일본의 사회보장 관련 지출은 2배 넘게 늘었다. 그러나 국민부담률은 30%를 밑돈다. 국채를 찍어 복지에 쓴 것이다. 부모가 자식 이름으로 돈을 빌려 복지잔치를 벌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연금 인상의 가장 큰 부담자인 미래세대는 소외되고 있다.
골목상권 다툼 또한 거세다. 대형마트는 한 달에 두 번 휴점을 해야하고, LED와 막걸리 같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품목은 대기업이 생산할 수 없다. 수년이 지난 현재, 대형마트의 매출은 예상대로 줄었고 전통시장 매출도 3년 사이 2조원 이상 줄었다고 한다. LED시장은 외국계 기업이 점령하고, 대기업이 뛰어들어 활성화된 막걸리 시장은 적합업종 지정 후 15% 이상 시장규모가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논쟁 테이블에서 가장 큰 불편을 겪는 소비자는 보이지 않는다.
세금 부담자인 국민이 빠진 복지논쟁, 미래세대가 무시된 연금인상, 소비자가 배제된 동반성장 협상. 정치의 주인·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다. 정책 제안에 철저한 ‘비용·편익 분석’이 동반돼야 한다. 기업의 주주가 정보 공개를 통해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진짜 주인들이 무상복지, 연금, 동반성장 등 각종 정책에 따른 ‘비용’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부담을 질 주인들이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직무를 수행할 의무’가 헌법 제46조에 명시돼 있다. 비용은 숨긴 채 편익만 국민에게 강조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며 공(公)돈을 공(空)돈 쓰듯 더 이상 국민의 세금을 낭비해선 안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소외된 주인들이 이제라도 정치적 현안의 논의 테이블에서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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