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이런 대응은 일본에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 4일 일본 니혼테레비의 정보예능 프로그램 ‘미야네야’(ミヤネ屋)에서 진행자 미야네 세이지(宮根誠司)가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태’를 두고 한 말이다.

‘가습기 살균제 파문’이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ㆍ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 등 유해성이 입증된 성분이 가습기 살균제로 이용된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세계의 조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과(?)도 5년이 지난 뒤에야 그것도 반강제적으로 나왔다. 정부는 5년이라는 긴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기업의 책임을 국민 세금으로 떠 넘기기까지 했다. 결코 ‘안전하지 못한, 기업도 정부도 믿을 수 없는’ 한국의 현실에 세계가 비웃고 있다.

한국에서만 사용했다=유독 한국에서만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벌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국에서만 유해성이 입증된 성분이 가습기 살균제로 이용되는 게 허용됐기 때문이다. 미국 식품의약국(EPA)과 일본, 호주, 중국 등에서도 PHMG는 피부접촉이 발생했을 때 유독성이 강하지 않은 물질로, 살균제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흡입”했을 때는 사정이 달랐다. 각 나라들은 별도의 예외조항을 둬 살균물질을 ‘흡입’할 경우 고독성을 검증할 수 있도록 안정성 검사와 성분 표시를 의무화했다.

면제로 가득찬 ‘있으나 마나한 법’=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유해성 심사 면제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법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는 얘기다.

미국의 독성물질규제법(TSCA)과 유럽연합의 화학물질규제법(REACH), 호주의 산업용 화학물질 등록심사법(ICNA Act), 일본의 화학물질의 심사 및 제조 등에 관한 법률(화심법) 등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PHMG나 PGH처럼 양이온성 고분자물질을 ‘흡입’하거나 새로운 용도로 사용하게 될 경우 위해성 평가를 의무화하는 조항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은 2009년 특정화학물질뿐만 아니라 모든 화학물질의 유해성 정보 제출을 의무화하도록 규제범위를 확대했다.

반면 국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1997년 고분자 물질 시험성적서 제출을 면제했다. PHMG가 여기에 해당된다. 2005년에는 고분자물질 유해성 심사도 면제했고, PGH가 여기에 해당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과 미국, 유럽 등 각 국가가 1998년 EPA의 흡입 독성 경고 등에 따라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의 분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하지만 한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CMIT와 MIT 등 유해성 심사 면제 고시를 계속해왔다고 한다”고 전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한국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해 한국 보건복지부가 조사결과를 발표한 작년 11월 “일본에서는 (한국에서 회수된) 제품의 유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유사제품에 의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후생노동성은 그러면서 액체형 살균제나 분무형 소독제에 대해 “독성을 감안할 때, 분무형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선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5년만에 이뤄진 사과…“있을 수 없는 일”=미야네야 프로그램에서 미야네 세이지는 “5년만에 사과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조사단계에서 관련성이 확인됐는데도 기업이 사과를 하지 않은 점이 의아하다”고 말했다. 변호사 스미다 히로코(住田裕子)는 이에 대해 “과실보다는 고의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이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보도할 때 주목한 점도 PHMGㆍPGH 등 유해성이 입증된 성분을 이용해온 옥시(레킷 벤키저 코리아)가 5년만에 사과를 했다는 점이다. 애경은 아예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WSJ는 이와 관련 “조사결과는 2011년에 나왔지만, RB코리아 측의 사과가 이뤄진 것은 5년 뒤였다”며 “옥시의 레킷펜키저는 호주에서 진통제 뉴로펜(Nurofen) 4종이 같은 회사의 일반 진통제 이부프로펜과 같은 성분임에도 다른 것처럼 소비자를 속여 판매해 170만 호주달러(약 14억 7200만원)의 벌금을 내게 됐다”고 보도했다.

기업 책임을 국민세금으로?…정부의 늑장대응=2013년 한국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들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결정에 대해 외신들은 일제히 “기업에게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엄격하게 대응했어야 했다”며 “기업의 책임을 국민의 세금으로 물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라이브도어 뉴스는 “2011년 환경부가 PHMG의 유해성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사과하지 않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국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부분이다”고 꼬집었다.

미야네야 프로그램에서 전문가들도 “2011년 폐손상의 원인에 가습기 살균제가 있다고 확인하고 (제품 6개에 대한 회수명령을 내렸는데도) 기업에 어떤 책임을 지도록 제재를 가하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즉각 대응에 나선 것처럼 보이지만 왜 기업에게 책임을 지지 않게 한 것이며, 판매 정지 명령 등의 방법을 동원하지 않은 것인지가 알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와 달리, 일본은 1957년 탈리도마이드 사건 이후 유해성에 관한 법을 강화해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제품의 판매 중지ㆍ회수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FDA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안정성이 검증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물질을 즉각 회수ㆍ판매명령 조치가 가능하도록 법이 마련돼 있다.

미국은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통해 국민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한 기업들은 파산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처벌을 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 법원은 난소암에 걸린 여성이 존슨앤드존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5500만 달러(63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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