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2010년 아이슬란드의 국민밴드로 불리는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보컬 욘시가 내한해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의 공연은 음악도 음악이지만, 수준 높은 무대 연출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에 관객들은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고는 무대를 담기에 바빴다. 팔 아픈 줄도 모르고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녹화한 이도 있을 정도다. 뒤쪽에서는 팔을 피해 공연을 보기 위해 고개를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해야 했다.
공연이 끝난 후 시규어 로스의 팬이자 해당 공연에 관객으로 왔던 가수 김동률 씨가 SNS에 쓴소리를 남겨 화제가 됐다. 그는 저작권 문제도 문제지만, 다른 관객들에게도 피해를 준다며 성숙한 공연 문화의 부재가 아쉽다고 했다.
최근 미국에서도 이같은 일로 유명 팝스타들이 공연장에서 휴대폰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여기저기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녹화를 하거나 SNS 하는 바람에 공연 분위기를 망칠 뿐만 아니라, 공연에 온 사람에게만 특별히 일찍 보여주고 싶었던 무대나 곡을 의도치 않게 공개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연에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경우에는 산업 기술이 유출되는 것과 비슷하다.
얼마 전 있었던 R&B 가수 앨리샤 키스의 공연에서는 입장을 위해 줄을 선 관객들에게 ‘욘더(Yondr)’라는 회사의 조그만 파우치를 나눠줬다. 이 파우치 관객들이 휴대폰을 넣으면 잠겨버려서 공연 중 휴대폰을 쓸 수 없도록 고안된 것이다. 만약 휴대폰을 사용하고 싶다면 휴대폰 사용 금지 구역 밖으로 나와서 잠금 해제를 요청해야 한다. 최근 재결합한 록밴드 건즈앤로지스(Guns ‘n Roses)의 공연이나 유명 코미디언 데이비드 채플의 공연 등에서도 이 파우치가 사용됐다.
연예인 측은 이런 조치까지 취한 이유에 대해 관객들에게 휴대폰을 꺼달라고 요청해봤자 지켜지지 않고, 한꺼번에 수거해서 보관했다가 다시 나눠줄 경우 분실 등의 우려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포크록 밴드 루미니어스(Lumineers)의 보컬 웨슬리 슐츠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봐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욘더의 창업자인 그래엄 듀고니(29)는 이러한 제품을 만든 이유를 두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아티스트가 공연 내용이 유출될 위험 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게 해주고, 관객들도 휴대폰으로 공연을 찍거나 문자메시지ㆍSNS를 하는 데 정신이 팔려 공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되는 일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그는 “휴대폰 없는 공연에 가보지 않았다면 당신이 뭘 놓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라며 “실제 삶 속에는 (휴대폰 사진이나 녹화 등으로) 복제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제라드 리틀(24)이라는 한 시민은 “요즘 시대에는 전화가 나의 기억 수단이다”라며 자신의 휴대폰에 다른 가수들의 공연 장면도 저장돼 있다고 말했다. 안드리아 오스톨라자(29ㆍ여)는 “플래시를 켜지 않는다면 공연에 방해를 준다고 생각지 않는다”며 공연을 함께할 수 없는 친구나 지인들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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