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짓게 해줄게” 서울시 제안에 고심 깊어진 흑석11구역

설계변경 시 착공 시기, 2026년 하반기까지 늘어날 수도

“이자 는다, 빨리 끝내자” vs “장기적 기회” 조합원 의견 차

흑석
지난 11일 철거가 진행 중인 흑석 11구역 인근의 한 건물의 모습. 김희량 기자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층수가 2개가 올라가잖아요. 무조건 해야죠.”

“안 그래도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데 입주 날짜 더 늦어지는 거 원치 않아요, 빨리 진행되면 좋겠어요.”

서울시가 흑석11구역에 용적률 상승(202%→250%)을 제안한 후 조합원 간 이견이 심화하고 있다. 용적률을 올리면 기존 1511세대가 1800세대로 늘어난다. 조합은 연말까지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정비업계는 내년 2월쯤은 돼야 용적률 변경에 대한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변경된 설계변경안이 채택될 경우 착공 시기는 늦으면 2026년 하반기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지난 11일 기자가 찾은 서울 동작구 흑석11구역 현장은 무너진 건물 잔해들과 모습을 드러낸 철골 더미들이 가득했다. 기자를 향해 한 현장 관계자는 “사진을 찍으시면 안 된다”면서 “조합 사무실을 통해서 얘기하라”며 예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철거 및 폐기물 처리 등 남은 작업이 끝나지 않아 올해 착공 및 일반 분양을 할 예정이었던 기존 시간표는 이미 연기된 상태다.

흑석11구역은 1만여 가구의 미니신도시를 꿈꾸는 ‘흑석뉴타운’ 사업지(1~9구역과 11구역) 중 한 곳으로 8만9332㎡ 부지에 최고 16층, 30개동, 1511세대 아파트를 지을 예정이었다. 서울시 제안한 용적률 250%는 공급 세대 수를 약 300세대 가량 늘릴 수 있어 사업성이 높다고 평가된다.

가림막
지난 11일 가림벽으로 가려진 흑석11구역 공사 현장의 모습. 김희량 기자

서울시 안대로 용적률 250%로 진행될 경우, 당초 약 17%(257가구)였던 임대 세대 비율은 약22.6%(약407가구)로 높아지게 된다. 임대 주택 외 분양할 수 있는 가구 수는 약150세대 정도 늘어난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주택 공급 확대라는 명분을 지킬 수 있다. 사업성 측면에서는 용적률이 늘어나면 공사비 등 비용 제외 기대되는 순수익이 1000억원 이상으로 전망된다.

가장 많은 세대 수를 가진 84A형 조합원 분양가는 약10억929만원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해당 평수는 10억~11억원 ‘피(프리미엄)’을 붙여 소량으로 거래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준공 이후 해당 평수가 최소 20억원에서 최대 25억원 선에서 거래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19년 12월 입주한 아크로리버하임은 지난7월 전용84㎡가 27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인근 아크로리버하임(2018년 준공)과 10년 이상 준공 연도 차이가 나고 수영장 등 단지 설계 상황과 더불어 경사진 곳에 짓는 한강 시야가 확보되는 높은 층 평이한 물건의 경우 현 시점에서는 25억원 가까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설계안이 변경 시 공사 기간 및 비용이 늘어나는 것에 일부 조합원들의 반대가 심하다는 점이다.

인근 A부동산 관계자는 “‘영끌’로 구입한 일부는 이자가 늘어나는 것에 조급해 하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층수 및 동간 거리가 개선될 기회로 보이는데 속도감 있게 진행돼 온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대하는 조합원들은 늘어날 이자 부담, 입주 지연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당초 흑석11구역은 2027년 10월께 입주가 예정된 곳이었다. 지난달 말 심의안이 서울시 제8회 정비사업 통합심의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이다. 변경된 설계안이 적용될 경우 서울시는 절차적으로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등 각종 인허가를 다시 거쳐야 한다. 정비업계에서는 이 경우 착공 지연 기간이 약 1년 정도로 입주 시기는 2028년 가을 또는 2029년 봄으로 늦춰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조합원은 “지금 주택 타입을 정하고 동·호수는 정하지 않은 상태인데 설계안이 바뀌면 재추첨은 물론 시간이 더 걸리지 않느냐”면서 “비례율에 따라 득을 볼 사람과 기간 연장이 부담인 사람들로 나뉘어져 의견이 분분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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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모습. 김희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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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11구역에 들어설 ‘써밋더힐’ 투시도. [대우건설 제공]

이미 무리한 대출을 한 조합원의 경우 비용 증가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용적율 변동 사안과 별도로 최근 시공사인 대우건설 측에서 2년 반 동안 상승한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 등을 이유로 조합 측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탁수수료 변경에 관한 최근 조합원들의 투표에서도 이같은 분위기가 전해진다. 지난 10일 진행된 임시총회에서는 관리처분계획인가에 연동된 신탁보수 조정의 건이 안건으로 올라왔는데 60%가 넘는 조합원이 이에 반대했다. 용적률 및 공사비 상향에 따라 분양예정총액이 증가하면서 신탁보수도 달라지는데 해당 안건이 부결되면서 조합은 신탁사와 재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서울시와 조합 측은 현재 상향된 용적률과 관련된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미 통합심의안이 통과된 만큼 변경된 사안에 대한 인허가 기간 소요가 부담이 되지 않도록 행정 지원을 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와 조합 등이 250% 용적률을 반영한 기본안을 만들고 있는데 빨라야 내년 1월에 나올 것”이라며 “제안이 채택될 되면 시는 주택공급 활성화 차원에서 조합에 최대한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 조합 측은 “조합원의 의견이 다른 상황이라 조합 측에서 답변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면서 말을 아꼈다.

상황을 오래 지켜 본 부동산들은 서로 다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서울 동작구 B부동산 관계자는 “탄핵 정국으로 주택 관련 각종 세제나 금융 정책이 변할까 불안감 느끼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다”며 “어떻게든 빨리 착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류 의견”이라고 전했다.

반면 인근 C부동산 관계자는 “150세대 가까이 늘면 벌게 되는 돈이 얼마인데 당연히 하지 않겠냐”면서 “‘몸에 좋은 약이 쓰다’면서 경험 있는 조합원들이 부담을 느끼는 이들을 설득해 추진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