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 이후 급격히 가라앉은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정부가 내년에 편성된 예산의 75%인 431조원을 상반기에 풀기로 했다. 17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골목상권·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 등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우리 경제가 조기에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국가 재정과 공공기관, 민간투자 등 가용 재원을 총동원해 내년 상반기에 집중 집행해달라”고 주문했다. 탄핵 정국 속 내수 회복에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데다 수출마저 흔들리자 재정 조기 집행을 통해 숨통을 틔우겠다는 뜻이다. 과도한 빚에 짓눌린 가계는 지갑을 닫고 있고, 고환율과 내수부진, 트럼프 리스크에 노출된 기업은 내년 경영계획 기조를 긴축경영으로 설정한 상황에서 재정이 경기 진작의 마중물이 돼야한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8년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가장 타격이 심했던 실물 부문은 민간소비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하필이면 한해 장사를 좌지우지하는 연말 대목에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가뜩이나 힘든 자영업자들이 벼랑끝에 몰렸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14일 윤 대통령 탄핵 가결 직후 그 어떤 소회보다도 “국민 여러분이 취소했던 송년회를 재개하시길 당부한다”고 말한 것은 소비 부진의 위기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건설투자나, 불확실성에 민감한 설비투자 역시 타격이 크다.
이런 와중에 거대 야당 단독의 감액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재정 대응 여력도 쪼그라들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4조1000억원이) 감액된 예산은 우리 경제(성장률)에 -0.06%포인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내년 경제 하방 위험이 있어 재정을 더 이용할 근거가 된다”며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다. 이 총재는 계엄 이후 최근 금융·외환시장이 비교적 안정을 찾았지만 소비심리와 내수 위축 우려는 더 커졌다는 진단에도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재정 조기 집행의 사령탑인 최상목 부총리도 국회 기획재정위 긴급 현안질의에서 “민생이 어렵고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돼 정부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 된다는 인식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추경 카드를 쓸 수 있음을 밝혔다.
여당의 합의가 없었던 초유의 감액 예산안은 어차피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차제에 추경이 내수 회복과 경기 진작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적시에 편성되도록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생사 갈림길에 직면한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취약층과 산업·통상 환경변화로 어려움에 직면한 기업들을 위한 맞춤형 지원에 중점을 둬야 한다. 내년 조기 대선 가능성을 겨냥한 포퓰리즘 추경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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