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쓰레기가 이렇게까지 많이 나와?‘
한 케이팝(K-POP) 아이돌의 콘서트가 끝난 현장. 사람들이 돌아간 공연장 주변에는 생수병과 식음료 용기, 굿즈(기념품) 포장재 등이 널브러져 있다.
“거의 쓰레기장 같다”는 주변 주민들의 비판이 이상하지 않은 모습. 그런데 반전이 있다.
바로 이 쓰레기들이 콘서트로 유발되는 환경오염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
바로 여타 전력 사용과 관객 이동 등에서도 큰 규모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기 때문.
단 한 번의 케이팝 콘서트가 일회용 플라스틱컵 약 4500만개를 생산·폐기하는 것과 맞먹는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분석도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폐기물 감축과 재생에너지 활용 등 지속가능한 공연이 확산하고 있지만, 케이팝 업계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더뎠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정부와 공연업계 등이 함께 지속가능한 공연의 공통 기준을 만들기 위한 논의에 착수한 것.
약 7500만명의 글로벌 팬덤을 보유한 케이팝인 만큼, 그 변화가 음악산업과 팬들에게 미칠 파급력도 크다는 기대가 나온다.
K-POP, 영향력은 커지는데…친환경은 ‘아직’
케이팝 팬들이 만든 기후행동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이 발간한 ‘저탄소 콘서트: 케이팝을 구할 새로운 무대’ 보고서에 따르면 음악산업에서 현장 공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3%에 달한다.
전력 사용부터 관객·아티스트 이동, 장비 운송, 폐기물까지 공연 전 과정이 탄소배출원이다.
실제 케이팝 공연에서 측정된 배출량을 보면, 그 규모가 더 쉽게 와닿는다. YG엔터테인먼트의 지속가능공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3년 블랙핑크 서울 콘서트에서 이틀간 발생한 온실가스는 약 5953톤에 달했다.
하루 평균 약 3000톤으로, 가솔린 승용차 약 700대를 1년간 운행하거나 플라스틱컵 약 4500만개를 생산·폐기할 때와 맞먹는 양이다.
다만 케이팝 업계가 지속가능성 자체를 외면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특히 폐기물 감축 부분에서 케이팝 공연의 변화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케이팝포플래닛이 지난해 국내 주요 엔터테인먼트 기업 5곳을 분석한 결과, 현수막을 재활용하거나 자원순환형 굿즈를 제작하는 등 폐기물을 줄이려는 시도도 여러 기업에서 확인됐다.
반면 탄소배출의 주요 원인인 에너지와 이동 부문의 구체적인 감축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분석 대상 공연 가운데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사례도 확인되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이미 공연 제작방식 자체를 바꾸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하고 일회용 생수병 사용과 항공 이동을 줄이는 방식으로 공연을 진행해 왔다.
관객들이 뛰면서 발생시키는 운동에너지를 전력으로 바꾸는 ‘키네틱 플로어’와 자전거 발전기도 설치했다. 이를 통해 최근 투어의 직접적인 탄소배출량을 직전 투어보다 절반 이상 줄였다.
이에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케이팝이 지속가능성 분야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팬덤의 결집력과 참여도가 높은 산업인 만큼, 공연 방식의 변화가 대중의 인식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다연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이너는 “문화의 힘을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쓸 수 있다면,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보여주는 데 더해, 산업 전반에서 긍정적인 도미노 효과를 부르는 데 일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POP도 지속가능 공연 ‘기준’ 만든다
실제 변화도 시작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 SM엔터테인먼트, 하이브, JYP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기획사 3곳과 서울·인천 지역 공연장을 중심으로 탄소배출량 측정 베타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지난달 인천에서 열린 ‘서스테이너블 웨이브 페스티벌’에서는 디젤 발전기 사용을 줄이기 위해 이동형 ESS를 도입하는 등 실제 공연 현장에서 탄소배출을 줄이는 실험도 이뤄졌다.
개별 현장의 시도를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기 위한 논의도 시작됐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지난 8일 국회에서 ‘탄소중립 공연행사 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한 협의체’ 출범식과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탄소배출량을 어떤 범위까지 측정하고 관련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할지 공통 기준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드러났다.
실제 케이팝 공연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한 내일의쓰임은 관객 이동을 조사하기 위해 참여형 탄소계산기를 운영했지만, 참여율이 10% 미만에 그쳤다. 예매처와 주최 측의 관객 고지 채널을 활용하기 어려웠고, 공연 협력업체의 데이터도 제공 의무가 없어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
친환경 공연에 필요한 비용과 인프라도 과제다. 서스테이너블 웨이브 페스티벌에서는 친환경 현수막 제작 비용이 일반 인쇄보다 약 3배 높았고, 이동형 ESS 역시 국내에서는 용량 등에 제약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기획사 등 업계의 부담도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대형 기획사와 달리 전담 조직이나 관련 예산을 갖추기 어려운 업체가 많은 데다, 공연마다 규모와 시설 여건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질 경우 이러한 여건 차이를 얼마나 반영할지도 관건이다. 자칫 일률적인 기준이 제시되면 법적 의무가 아니더라도 업계에는 사실상의 규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최태영 한국대중음악산업협회 사무국장은 “대형 기획사들은 공시 의무화가 있기도 하고 전담 부서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들이 훨씬 많다”며 “가이드라인이 처벌을 위한 건 아니지만, 지키지 않은 주체가 이미지 타격을 받는 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시설마다 특성이 다르듯이 공연도 각각의 특성이 있다”며 “다양한 공연들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공연 주체에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보다 시설의 여건에 맞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부는 우선 현황 파악과 업계 협의를 거친다는 입장이다. 김유미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장은 “가이드라인을 만들려면, 문제제기에 대한 현황파악이 우선적으로 돼야 한다”며 “이러한 실태를 바탕으로, 내년에 가이드라인을 업계와 검토해볼 예정이다”고 말했다.
협의체는 내년 2월까지 5차례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탄소배출 측정을 시작으로 공연 에너지 전환과 폐기물 감축·관리, 인센티브 설계 등을 논의하고, 이를 토대로 문체부의 공식 탄소중립 공연·행사 가이드라인 제정을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이다연 캠페이너는 “케이팝이 전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음악으로 성장한 데는 팬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고, 팬으로서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이제는 케이팝이 기후위기 대응에서도 앞장서 지속가능한 공연의 기준을 제시하고, 글로벌 음악산업의 변화를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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