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폭압이 극에 달했던 1939년 재일 조선인의 아들로 태어나 온갖 차별과 냉대를 감수하며,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화가의 꿈도 버리고 생업에 매달려야 했고, 그렇게 고생하며 평생 일해 번 돈으로 구입한 미술작품을 조국에 환원, 사회에 큰 울림을 선사한 이가 있다. 바로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인 동강(東江) 하정웅 박사(조선대 미술학 명예박사)의 이야기다.

재일교포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그는 1993년 이우환, 전화황, 문승근, 송영옥 등 재일작가 작품 212점, 1999년 피카소와 샤갈, 앤디워홀, 벤샨 등 해외 유명작가 작품 76점을 포함한 총 471점을 비롯해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총 2,222점의 미술작품을 광주시립미술관에 조건없이 기증했다. 이에 광주시립미술관은 하 박사를 명예관장으로 예우하고 ‘하정웅 컬렉션’ 작품들로 연중 기획전을 마련하며, 그의 뜻을 받들어 2001년부터 하정웅 청년작가 초대전 ‘빛’을 매년 열어왔다. 지난해 10주년을 맞이한 하정웅 청년작가 초대전은 미술계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신진들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로 현재까지 배출한 작가만도 약 50명에 이른다.

이처럼 광주에서 시작된 하 박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메세나 실천은 그 동안 전국으로 확대됐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부산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조선대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국립고궁박물관 등 그가 평생 모은 작품과 자료를 기증한 조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작품수로는 7,000여점에 달하며, 비록 금전적 가치로 재단할 순 없으나 감정평가액은 수천억 원을 넘어선다. 특히 하 박사는 부모님의 고향인 전남 영암군에도 2007년부터 2,500여점의 작품을 기증, 내년 4월 완공될 ‘영암군립河미술관’의 초석을 다졌다. ‘영암군립河미술관’은 전화황, 손아유 등 재일교포 작가들과 샤갈, 미로, 헨리 밀러의 작품들까지 시공을 초월한 수작들을 보유, 군(郡) 단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만큼 수준 높은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여기에 하 박사가 도자기 300여점을 기증하고, 왕인묘와 ‘영암군립河미술관’에 300여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어 그 가치를 더욱 승격시켰다.

이런 일련의 활동들에 대해 그는 “미술은 공동의 가치를 가지는 세계이므로 미술품은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며 “광주와 전남, 조국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은 소중한 명예”라 덧붙였다. 한편, 미술품 기증 외에도 하 박사는 광주광역시 시각장애인복지관 건립 등 인권과 평화를 추구하는 다양한 사회공익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화가를 꿈꿨던 개인적 열망으로 미술품을 수집하고, 다시 사회에 환원하며 컬렉터로서 더 큰 그림을 그려온 하 박사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신지식 문화인의 표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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