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끝까지, 죽을 때까지 (41)
글 채 희 문 | 그림 유현숙
“어떻게 책임지겠습니까?”
“책임이요? 그야… 목이라도 내놓아야 마땅하지요.”
“그럼 사표 써서 올리세요.”
재벌 2세와 통화를 하던 도종호 상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야 말았다. 목을 내놓으라니… 책임지라는 말에 의례적으로 내뱉은 말일 뿐이었는데 재벌 2세는 단칼에 그의 목을 베고야 만 것이다.
막내딸이 대학교 1학년이니 앞으로 내야할 등록금이 3천 만 원, 큰 아들 장가들이려면 전세집이라도 마련해줘야 하니 필요한 목돈이 1억, 매달 불입해야 하는 종신보험이 다달이 3백, 그리고 생활비가 다달이 8백… 그보다도 걱정인 것은 이제 막 혼사가 오가는 사돈 측에 내밀 명함이 없어진다는 것, 막상 백수가 되면 결혼식장에 찾아 올 하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
도종호 상무는 포장마차에 홀로 쪼그리고 앉아 연거푸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쩌면 먹다 남은 복숭아를 바친 죄가 이리도 크단 말인가.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재벌 2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태껏 거성을 위해서 해 온 일이 얼마인데 그까짓 실수 한 번으로 목을 치냐고 항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다시 전화를 건 것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급하게 마신 소주로 인한 취기 때문이었을까?
“접니다, 전략담당 상무이사 도종호! 유민그룹에서 블루아우토를 먹어치우려는 걸 제지했던 장본인 도종홉니다. 그래서 블루아우토를 흡수 합병시키고 그 대표였던 권도일을 거성으로 영입해 온 장본인 도종호란 말입니다.”
“그래서요?”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크리스 뱅글과 교분을 맺을 수 있도록 조치한 장본인도 저 도종호고요, 튜닝의 대가 현성애 씨를 거성으로 끌어들인 장본인도 역시 도종호… 바로 저란 말입니다. 오장님! 그런데…”
“밤이 늦었습니다. 도 상무님. 내일 회사에서 말씀 나누시지요.”
“그런데도… 저를 자르시려고요?”
“공치사를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협박을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들어보니 그 모든 일이 전략담당 상무로서 의당히 해야만 할 일이로군요. 사표를 받아만 놓고 수리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젠 정말 사표수리를 해야 하겠습니다. 내일 만납시다.”
역시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찬바람이 일 정도로 냉랭한 재벌 2세의 목소리가 마치 노래 소리처럼 들려오더라는 사실을 그는 믿기 어려웠다. 어쩌면 한 소절 짧은 노래를 들은 것 같았으나 다시 새겨보니 정말로 해직 당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원래 임원이란 임시직원의 약자라고 하지 않던가. 노사로 구분하여 보면 ‘사’에 속하지만 실속을 따져보면 월급쟁이일 뿐, 칼처럼 생겨먹었으나 날이 무뎌서 두부 한 모도 마음대로 베어낼 수 없는 무딘 칼 아니었던가.
“아이고,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오장님, 오장님!”
오장님이라고? 감히 재벌 2세의 면전에서 속된 별명까지 불러 제쳤으니 더 이상 용서받을 재간이 없었다. 술이 원수였다. 정신은 말짱해도 이상하게 혀가 말려서 뜻하지 않은 말이 새어나오는 경우가 바로 지금과 같은 경우였다.
“제가 서비스로 소주 한 병 쏘겠습니다. 기운 내세요, 손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전화통화를 엿듣고야 말았던 포장마차 주인이 선뜻 소주 한 병을 내밀었다. 쉰 살이나 되었을까? 턱에 수염이 거뭇거뭇한 사내였다.
“까짓 거, 직장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마을버스 놓쳤다고 기죽지 말라는 겁니다. 혹시 알아요? 리무진 버스가 뒤따라올지?”
마을버스 떠나가니 리무진이 온다? 포장마차 주인의 담담한 말에 도종호 상무는 기가 막혀 입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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