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원사파동 이후…동대문시장 총체적 위기
떨어질 줄 모르는 원단값 원단 상인들도 동대문 떠나고 모험 꺼리는 무명 디자이너들 면티셔츠 같이 돈되는 아이템만…
동대문시장이 총체적으로 망가지고 있다. 경제는 어렵고, 찾는 사람도 줄었다. 세계 유일의 ‘동대문식(디자인부터 최종생산까지 한 지역에서 가능한) 원스톱 공정’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옷 디자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원단 값은 2010년 ‘원사파동’ 때 정점을 찍은 뒤 내려갈 줄 모른다.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원단상인들은 더 이상 동대문을 주 무대로 장사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치솟는 원단가격에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싸고 잘 팔리는 기본아이템과 패턴만 고집한다. 도매상도 손해를 감수하며 팔 수밖에 없다. ‘원료공급-디자인-생산-판매’의 끈끈한 고리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일까.
박재만(43ㆍ가명) 씨는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13년째 원단장사를 하고 있다. 오랜 경력의 그도 최근 면류 등 일반원단에서 특수원단으로 취급품목을 바꿨다. 중국산에 종속된 일반원단 대신 한국산 위주의 특수원단을 수출하면서 겨우 숨통이 트였다. 그는 “동대문 시스템이 돌아갔던 이유는 디자이너들이 필요로 하는 가공상태의 원단이 언제나 대기상태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파키스탄 등 면화 생산국들이 수출을 통제, 중국 같은 대량생산기지의 면화 값이 폭등했던 원사파동을 거치면서 사단이 났다.
원단 출고가가 크게 올라 떨어질 줄 모르고, 재고 창고 임대료, 인건비 등 리스크 비용까지 따라 올랐다. 수지가 안 맞으니 공급이 준 것은 당연했다. 원단공급상 대부분이 이제는 동대문에 ‘올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원단 값이 올라가자 디자이너들은 ‘모험’을 꺼리게 됐다. 동대문의 영광을 이끌었던 무명 디자이너들이 이젠 새로운 시도 대신 잘 팔리는 면 티셔츠 등 기본아이템만 고집한다.
동대문에서 7년째 여성복 디자인을 하는 조은정(27ㆍ가명ㆍ여) 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많이 찾고 돈 되는 ‘기본아이템(원형적 디자인의 남방, 셔츠, 바지 등)’이 우선” 이라고 말했다. 원단 가격 때문에 예전처럼 다양한 패턴과 디자인이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3~4년 전에 비해 시즌(S/S, F/W)별 새 디자인 종류도 30% 이상 줄었다. 조 씨는 “싼 원단으로는 이미테이션만 가능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원단 값이 오르고 디자이너들의 발주물량도 줄어드니 자동적으로 공장 쪽 생산비도 올라가게 마련. 그러나 유일하게 원가를 낮춰줄 인건비는 내려갈 줄 모른다. 생산공장이 하나 둘 문을 닫는 건 당연지사다.
한국의 대규모 공장은 씨가 말랐고, 요즘은 중국 인건비도 만만치 않다. 2년간 중국에서 생산공장을 운영하다 손해를 보고 국내에서 도매상을 하고 있는 최성진(39ㆍ가명) 씨는 “기술이 좋은 A급 미싱사들도 월 200만원을 채 못 받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다음은 도매상 차례. 공장에서 비싸게 물건을 들여와 소매상이나 소비자들에겐 싸게 팔고 있다. 누존 건너편 ‘유어스’에서 여성복 도매상을 하는 신미진(28ㆍ가명ㆍ여) 씨는 “과거에 비해 채산성이 나빠졌어도 비싸게 팔 수가 없다” 고 말했다. 고객들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신 씨는 인터넷과 TV 탓도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곳 도매상이 많이 공개되고, 인터넷에 ‘옷 싸게 사는 법’ 등이 널리 퍼지면서 소매상을 가장한 일반손님들이 큰 봉지나 가방으로 한꺼번에 사가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하소연한다.
싸게 옷을 사는 사람들이 늘면서 고정고객이던 지역 소매상들도 문을 닫았다. 신 씨는 “새벽시장을 찾는 소매상들은 예전의 절반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3분의 1이나 떨어진 매출은 회복될 기미가 없다. 그 틈을 비집고 인터넷쇼핑몰이 대거 시장에 들어왔다.
그들은 중국 등에 자체 생산 파트너를 끼고 ‘동대문표’보다 낮은 가격으로 승부한다. 그래도 그들은 마진이 남는다. 오프라인과 달리 택배비에서나마 몇 백원을 남길 수 있다. 박리다매로 운송비를 낮추고 소비자에겐 정상 택배비를 받는 ‘리베이트 마진’이 가능하단 소리다. 최근엔 브랜드 의류도 이런 인터넷 판매방식이 부쩍 늘었다.
물론 기대와 희망도 공존한다. 디자이너들은 필요한 수요를 해외 한인전용 숍 등 틈새시장에서 찾는다. 여유 있는 디자이너들은 중국에 직접 사무실을 내고 필요한 원단을 싸게 공급받기도 한다. 잘 나가는 원단공급업자들은 능력이 검증된 디자이너들을 ‘알바’로 고용해 자체 제작한 원단을 직접 홍보한다. 도매상들은 해외로 판매선을 다각화하고 있다. 기존의 ‘원스톱 공정’에서 수많은 가지치기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종로5가에서 15년째 원단도매업을 하며 유명 디자이너들과 직거래도 하고 있는 김진석(45ㆍ가명) 씨는 “동대문은 망하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원료부터 디자이너, 생산 등 모든 부문에서 살아남는 곳들만 살아남고, 영세한 곳들은 고사하는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윤현종 기자> /factism@heraldm.com
jym6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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