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3회> 모든 길은 하나로! 2
늘 1등 하던 사람이 어쩌다가 실수라도 하면 원성이 높아진다. 수영선수 박태환,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꼴찌, 혹은 꼴찌에서 둘째가는 정도의 한심이들도 그런 점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꼴찌이기 때문에 늘 주눅 들어 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황금의 중용’이라는 멋진 길이 각광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북한의 당 간부 도형철은 서열 33위 정도의 중간 간부였으므로 스트레스 제로의 청정지역에서 살아온 셈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존재감이 제로여서 위원장의 얼굴 모습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불편한 진실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
이를 테면 그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간부서열 10위 이내로 진입하고 싶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위원장 동지와 악수도 하고, 함께 시찰을 다니며 폼도 재고, 목에 힘도 주고, 사진도 찍히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대회란? 다름 아닌 ‘외국인 혼합 아마추어 골프대회’였다. 지난해 4월, 영국의 루핀 여행사 주최로 평양골프장에서 ‘외국인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10여개국 선수가 참가한 데에 고무되어 당에서는 새로운 골프대회를 열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이번엔 막대기 공알치기 대회에서 꼭 10등 안에 들고야 말갔어. 그러면 생전 처음으로 위원장 동지의 앞모습을 볼 수도 있갔지?”
“그러게 말이외다. 이번엔 꼭 소원성취하시기 바랍네다.”
도형철은 운전대를 급히 돌려 평양골프연습장 정문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평소 전용 운전사가 딸려있었지만 자본주의 체육오락인 골프를 연습하러 오는 날 만큼은 직접 차를 몰고 오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따라 운전대가 왜 이리 무거워?”
운전경험이 많지 않아서인지 차는 울컥거리거나 갸르릉!거리며 클러치 어긋나는 소리를 내곤 했다.
“위원장 동지 손이라도 맞잡아야 소원성취하는 거 아니갔어?”
“앞모습만 볼 수 있어도 그게 어딥네까? 평생토록 위원장 동지 꽁무니에 대고 절만 해댔지 않았시오?”
“고렇기는 하디.”
“저도 카자흐스탄에서 경주운전 교육만 받고 오면 훈장을 탈지도 모릅네다. 왜 그런지… 위원장 동지께서 요사이 느닷없이 자동차 경주에 관심을 보이신단 말입네다.”
“그러게 말이야. 만날 땅크로 속도경주나 벌이더니 출세했고만.”
“부루도자로 속도경주를 벌인 적은 있어도 땅크로 속도전을 벌인 적은 없습네다.”
“그거이나 저거이나… 똥이나 된장이나!”
“곧 생겨날 종합체육오락단지에 18구멍 공알치기장도 생기고, 속도전 자동차 경주장도 생긴다니 우린 곧 출세할 일만 남지 않았갔습네까?”
“그렇디? 출세가 눈앞에 훤히 보이디?”
북한 내에서 누구보다도 뛰어난 골프실력자인 도형철은 이렇게 자위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불도저나 관리하던 공병 사단장을 카자흐스탄으로 파견하여 경주운전교육을 시킨다는 사실이 영 찝찝하기만 했다.
“아무리 자동차 경주가 좋다고 해도… 외화벌이에는 18구멍 공알치기가 제일이디. 지난 2005년에 열린 통일기원 남북한 프로암 꼴푸대회 기사는 뉴욕타임스 미국 신문에도 실렸어! 외회벌이를 잘 해야 출세도 빠르지 않갔어?”
그는 옆자리 조수석에 앉아있는 공병 제6사단장에게 들으란 듯이 이렇게 말했다. 말하자면 권력을 해바라기 하는 자들의 질투였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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