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9회> 모든 길은 하나로! (28)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본인도 모르게 전략기획실장 자리가 바뀌었단 말입니까?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누가 그런 짓을 한 겁니까?”

“원래 인사이동은 쥐도 새도 모르게 기습적으로 발표하는 겁니다. 정 궁금하시면 유민 그룹 비서실로 전화 해보세요.”

이상 끝! 어렵게 시도한 인터넷 국제전화는 지지직~ 하는 잡음과 함께 끊어졌다. 하지만 주거래은행 법인사업부 윤 대리의 행동은 전혀 잡음이 들리지 않을 만큼 명쾌했다. 답답한 쪽은 오로지 한승우 일뿐.

그는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재벌회사 전략기획실장으로 등극했다며 기뻐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떠다녔다. 아무래도 무슨 착오가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한 그는 전자수첩을 뒤져 유민그룹 비서실 인사 담당자 이름과 직책,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안녕하세요? 전략기획실 한승우입니다. 혹시 이번에 단행 된 그룹 인사 발령자 명단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는 대뜸 전화를 걸어 이렇게 묻기 시작했다. 어차피 인사 담당자와는 일면식도 없었으니 자신이 처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까닭도 없었다. 얼굴을 모르고 목소리를 모르면 결국 남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남에게 구구절절이 사정할 필요가 있을까…

“신분 확인 없이 일반인에게 알려드릴 수 없는 사안입니다.”

“일반인이라니요? 전략기획실 한승우라고 밝혔잖아요? 한·승·우… 한승우 모르세요? 전략기획실장!”

“다시 말씀드리지만 인사발령자 명단은 각 회사별로 공문처리 해서 보냈고요, 주요 직잭인 경우엔 일간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일반인이라도 인터넷으로 확인하실 수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뭐라고요? 아… 알겠습니다. 일간지엔 언제 실렸습니까?”

“벌써 이틀 지났네요. 지난 화요일 자에 실렸습니다.”

아하! 그랬구나… 그는 인사 담당자와의 통화에서 자기가 직무해제, 직위해제 당했음을 직감했다. 문제는 신희영의 안위였다. 만약에 신희영도 유민 제련그룹에서 털려났다면 그야말로 자기는 닭 쫓던 개로 전락하는 셈이 될 테니까.

“이런 제길! 사냥 끝낸 개든, 닭 쫓던 개든, 비루먹은 상가 집 개든… 어차피 시골 똥개 신세로 전락했구먼.”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인터넷을 통해 지난 화요일자 국내 일간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물론 인사동정 난이었다. 이리 저리 한참을 뒤진 연후에야 그는 손바닥만 하게 게재된 유민그룹 계열사 인사동정을 읽어볼 수 있었다.

“아흐!”

잠시 후, 그는 저절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신희영을 비롯하여 강준호, 그리고 본인에 이르기까지 해직되었음을 알리는 내용이 인사동정의 첫 줄을 장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굵고 진한 고딕체 글씨로, 보란 듯이 첫 번째 줄에…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을 아시는지… 일생일대의 위기가 닥쳐왔음을 직감한 한승우는 즉시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신희영이라는 닭은 이미 지붕 위로 날아 간지 오래였다. 유민 회장에게 털려난 그녀야말로 어쩌면 꽁지 빠진 닭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딸, 유한솜의 깃털은 여전히 찬란했다. 왜냐고? 유한솜은 신희영의 딸이기도 했지만 유민 회장의 딸이기도 했으므로…

‘기필코 유한솜의 마음을 되찾아 와야겠군.’

인지상정이었다. 하지만 유한솜의 마음을 되찾아 오기도 쉽지는 않았다. 그녀의 마음이야말로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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