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0회> 사랑을 위한 의식 (8)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믿어지지 않습니다. 국정원에서 잘못 알아왔겠지요. 어떻게 자기 딸을 외간남자 품에 안기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북한에서 당 간부서열 33위인 도형철은 곧 숙청당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태성호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평양골프장도 요즈음엔 개점휴업상태지요. 골프로 무언가 해보려던 당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진 모양입니다.”

권도일은 보릿단처럼 비스듬히 선 채로 예원희와의 상열지사를 떠올렸다. 사랑의 행위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 이른바 전희의 과정을 인도주의적 상황에 비추어 여자의 자주권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극구 사양하던 여인.

여성의 몸 중에서 최대 열점지역을 지체 없이 까발리고, 여성의 자주권이 행사되어야 마땅한 지역에 서툰 불질을 해대는 그런 짓 보다는 소나기 목욕을 하는 편이 훨씬 좋다며 망설임 없이 권도일의 벗은 몸 위에 비누칠을 하던 여인.

거칠 것 없이 솔직하고 밝은 성격을 지닌 그 여인을… 아오지로 보낼 수는 없었다. 도형철이 그녀의 아버지라면, 도형철의 숙청은 곧 그녀의 숙청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도저히 그녀를 숙청당하도록 놓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저지른 약속을… 어찌해야 좋을까요?”

권도일은 구원을 바라는 마음으로 재벌2세에게 물었다.

“어쩌기는요? 약속을 하셨으면 지켜야지요. 비록 LPGA경기를 유치할 수는 없지만 비슷하게는 질러야지요. 다행히 LPGA 투어가 끝난 시점이니… 부릅시다.”

“네? 부르다니요?”

“제일 먼저 유민그룹의 강유리 선수를 부르시고요, 캐리 웹, 아니카 소렌스탐, 크리스티 커, 제니퍼 로자레스, 로레나 오초아… 또 누구 퍼뜩 떠오르는 선수 없어요? 아! 폴라 크리머… 이런 선수들 모두 연락하세요. 그들의 본분이 골프로 돈을 벌겠다는 프로 선수들인데 돈으로 유혹하는 것이 잘못입니까? 얼마라도 좋습니다. 돈으로 그들을 모셔오세요.”

재벌2세는 결심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하는 일이라며 비서실에 연락하여 스포츠마케팅 관련 임원들을 소집시켰다. 그의 말 한 마디에 거성그룹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하긴 미리 예상한 일이었고 충분히 준비했던 일의 시작이었다.

“11월부터 2월까지는 골프선수들로선 비수기 아닙니까? 위기가 곧 기회라고, 비수기가 곧 절호의 찬스란 말이지요.”

“그럼 당장 북한에서 골프대회를 열 계획인가요?”

“그렇습니다. 겨울골프! 동토의 왕국에서 벌어지는 겨울골프! 얼마나 낭만적입니까? 그리고 상금도 LPGA 평균상금의 세배로 내걸 예정이니까 피가 튀겠지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권도일은 재벌2세에게 허리 굽혀 절했다. 하지만 재벌2세는 오히려 권도일에게 고마움을 되돌리고 싶다며 껄껄 웃었다.

“이 모든 일들이 5개국 관통 랠리대회를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그 랠리에서 우리 거성그룹의 1974년산 치타를 몰고 달릴 사람이 바로 권 전무님과 유민그룹의 유호성 선수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재벌2세의 이 말 속엔 여러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유호성은 5개국 관통 랠리대회의 드라이버지만 현재는 골프선수로 전향한 상태였는데… 그와 연합하기 위해 강유리부터 낚는 것이 수순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5개국 랠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저 위에서 거성을 지켜보고 있는 대선주자가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일 뿐이었다.

<계속>